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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Apr 16. 2022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최근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심각한 갈등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늘 불안하고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러면서도 빈둥빈둥 거리며 늘어져있는 내가,

꼭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쭈글쭈글하고 얇디 얇아

쓸모 없이 바닥에 뒹구는 느낌이다.


구멍이 크게 나버려서 공기를 불어넣는다 해도

다시 빵빵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기분이 3월 초,

이사 후부터 지금까지 한 달 반 정도 나를 휘감고 있다.

이사 오기 전,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장 건물에 있는 사택에 살았다.

그래서 점심, 저녁을 남편과 같이 먹었다.

하루는 식사 준비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새로 옮긴 곳은

남편 직장 건물 바로 옆에 따로 있는 사택이다.

그런데 멀리서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많아

점심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먹는 문화가 있는 곳이다.

점심 준비를 하지 않는 만큼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멍해지는 일이 잦았다.

생산성 없이 하루를 보내는 시간들이 아깝기도 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인의 소개로 상담센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나를 이야기해보라고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개인 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황당했다.

그러면서 좋기도 했다.

슬픈 기색, 무력한 느낌은 별로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상담이 필요해 보인다는 말씀이 고마웠던 거다.


우울증이 끝나도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다.

삶의 패턴이 조금 달라지고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긴 한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이 아주 많이 바뀌진 않는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학교를 그만두었고

지금까지 전업주부 상태로 지내고 있다.

되~게 편하나 되~게 불편하다.

몸은 엄청 편해서 살이 조금씩 찌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 불편해서 늘 불안하다.

남편은 집안일에 대해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으며

내가 하는 일들에 모두 감사하고

나를 굉장히 아껴준다.

그런 남편과 둘이 사는 데에도

혼날까 두려워하는 내가 참 이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기력하고 울적한 마음을 자주 느낀다.

이게 딱 순수한 나의 상태인 것 같다.


스트레스가 없어도

나를 속상하게 하는 사람이 없어도

늘 이런 느낌으로 자신을 갉아 먹는 나.


언젠가 열정으로 가득했을 내 마음이

어느 틈엔가 서서히 커져버린 구멍으로

빠져나간 공기의 자리만큼

축 늘어진 늙은 풍선처럼 버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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