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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07. 2021

퇴고하기 싫어?

퇴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초고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려고 해도 쓸 게 없어서 막막하다던데 그런 타입은 아니다. 아니면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뭐든 떠오르면 막 쓰는 건 쉽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즐기지 않았던 이유는 퇴고하기가 너무 싫어서다. 


글쓰기에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학교나 교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탔던 것 같다. 그중에는 동시도 있었고 긴 글도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쓰기 시간에 글을 써서 발표하면 칭찬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어린 시절'을 주제로 작문 숙제가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썼다며 담당 선생님께서 내 글을 교실에 가지고 오셨다. 직접 읽어보도록 해주셔서 열심히 읽었더니 동급생들이 웃겨 죽는다고 웃어댔다. 돌아보니 이런 일들이 큰 자극이 되진 않았는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부담 없이 글 쓰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게 된 건 직장에서였다. 담임교사들에게는 해마다 2번의 중대한 업무가 있다. '행동발달 상황 및 종합의견'란을 채우는 일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부담스러운 글쓰기이다. 1학기 또 1년 동안 관찰한 아이들의 모습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과 학생들의 장점은 크게 칭찬하면서 단점을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초임 교사들은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예시된 글들을 참고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다. 각 어린이들의 특징을 쓰고, 관찰한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되, 잘하고 있는 점을 많이 썼다. 그리고 부족한 점을 채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격려하는 내용으로 적었다. 그랬더니 통지표를 받고 감동하신 학부모님들께서 감사인사를 해오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므로 템플릿이 있으면 쉽게 쓸 수 있었다. 또한 글의 양도 300자 이상을 넘을 필요가 없어서 퇴고에 드는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공립학교에서는  공무원으로서 업무상 맞춤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나 '글쓰기'자체의 능력이 업무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나의 글짓기 실력은 그 정도에 멈춰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났다. 인기 있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글 쓰는 목적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민들이 큰 파도처럼 내게 부딪쳐왔다. 그러자 아주 큰 난관이 가로막고 나섰다. 

그것은 바로 퇴고. 초고 쓰기는 너무 쉽지만 퇴고는 1번도 하기가 싫다는 마음. 그냥 살던 대로 대충 살면 안 될까 싶은 마음. 던전에 나오는 최종 보스가 등장한 느낌이었다. 이놈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인기글도, 좋은 글도 없을 예정이 되니까. 아예 던전 진입 전에 게임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퇴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엔 선배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스테르담 작가님과 김선 작가님이 쓰신 퇴고에 관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11번의 퇴고를 거쳐 마침내 장편소설을 펴내신 현주 작가님의 사연도 읽었다. 작가님들은 각자 퇴고를 해야 하는 목적이 분명하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퇴고를 무진장 여러 번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퇴고가 여러차례 된 글들에서 몇 개의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확실히 가독성이 높았고, 의미 전달이 분명했다. 둘째, 각 문장은 내용 이해에 딱 적절한 만큼의 길이로 구분되어 있었다. 셋째, 신경 쓰이게 만드는 표현이 적어 글 내용에 깊이 빠져들기 좋았다.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퇴고하면 조금씩 그렇게 된다는 거잖아!


그래서 내린 결론은 퇴고에 관한 공부를 하자는 것. 그래서 매거진(첫 이름: 퇴고하기 싫어)을 만들었다. 첫 글을 쓰던 중 스테르담님의 글이 피드에 올라왔다는 알림을 보았다. 제목은 '쌓이면 필력이 되는 퇴고 노트'였다. 글을 읽고 나서 매거진 이름을 바꿔보았다. '퇴고하기 싫어 만든 노트



'초고는 글이 아니다.' - 스티븐 킹

'어떤 유능한 작가라도 초고는 쓰레기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대작을 쓰신 선배님들이 말씀하셨다. 초고에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 말라고. 그러나 초고는 글도 아니고 쓰레기일지도 모르지만, 초고가 없으면 퇴고도 없다는 것을 그분들이 더 잘아시겠지. 이제 마구 써 내려간 첫 글에서 보석 같은 것들을 주워 담아 반짝반짝 빛나는 글을 쓰고 싶다.


퇴고하기 싫어?

아니! 할래! 


이미지출처: Pixabay@Free-Photos






<아래 부분은 작가의 퇴고 공부를 위해 남겨둔 부분입니다.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초고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려고 해도 쓸 게 없어서 막막하다던데 그런 타입은 아니다. 아니면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뭐든 떠오르면 막 쓰는 건 쉽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글을 쓰는 것을 크게 즐기지 않았던 이유는 퇴고하기가 [너무] 진짜 싫어서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글쓰기에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을 두지 않았지만 학교나 교회에서 여러번 상을 탔던 것 같다. 그 중에는 동시도 있었고 긴 글도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쓰기 시간에 글을 써서 발표하면 거의 칭찬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작문 숙제를 냈는데 정말 재미있게 썼다며 다며 담당 선생님께서 [내 글을 교실에] 가지고 와서 읽어주[오]셨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좀 오글거린다. 직접 읽어보도록 해주셔서 열심히 읽었더니 동급생들이 웃겨 죽는다고 웃어댔다. [그날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일어났던 일일뿐 [돌아보니 이런 일들이] 큰 자극이 되진 않았는지] 그렇지만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부담없이 글 쓰는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게 된] 발견한 건 다름아닌 직장에서였다. 담임교사들에게는 해마다  2번의 중대한 업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행동발달 상황 및 종합의견'란을 채우는 일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부담스러운 글쓰기이다.] 1학기 [또는] 1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보아온] 함께 생활한 아이들[의] [모습을]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해야한다는 점과 학생들의 장점은 크게 칭찬하면서 단점을 [조심스럽게 표현해야한다는 점에서.] 슬쩍 끼워넣어 써야한다는 점에서[.] 고난도의 글쓰기다.  [그래서] 대부분의 [초임] 교사들이 이것에 부담을 느끼므로 선배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예시된 글들을 참고[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각 어린이들의 특징을 쓰고, 관찰한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되, 잘하고 있는 점을 많이 썼다. 그리고 부족한 점을 채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격려하는 내용으로 적었다. 이 글쓰기(?)로 인해 통지표 받고 감동하셨다는 어머님들도 꽤 계셨다.


그렇지만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므로 템플릿이 있으면 쉽게 쓸 수 있었다. 또한 글의 양도 300자 이상을 넘을 필요가 없는 짧은 글이라 크게 퇴고에 드는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공립 초등]학교라는 곳은 [학생들에게 표준어와 맞춤법을 가르치고, 또한 공무원으로서 업무상 맞춤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나]'글쓰기'자체의 능력이 업무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나의 글짓기 실력은 [그]고등학생 정도에 멈춰있었던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났다.]가 있었다. [인기있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글쓰는 목적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빨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과 브런치가 좀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 인기글을 쓰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궁극적으로 글을 쓰는 목적을 놓치지 말자, 퇴고를 잘 해야한다 등 글쟁이들이 겪는 고민들이 큰 파도처럼 내게 부딪쳐왔다. [그러자 아주 큰 난관이 가로 [막고 나섰다.] 막았다. 퇴고. 초고쓰기는 너무 쉽지만 퇴고는 1번도 하기가 싫다는 마음. 그냥 살던 대로 대충 살면 안될까 싶은 마음.]그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이 바로 퇴고였다. 다른 것들은 글을 꾸준히 쓰면서 향상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퇴고는 그냥 시간 지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 인기글도 없고, 글을 잘쓸 수도 없으며, 글쓰는 목적도 이루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넘기 어려운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에 나오는 최종보스가 등장한 느낌이었다.]


퇴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엔 선배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스테르담 작가님과 김선 작가님의 퇴고에 관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11번의 퇴고를 거쳐 마침내 장편소설을 펴내신 현주 작가님의 사연도 읽[었]어보았다. 작가님들은 각자 퇴고를 해야하는 목적이 분명하셨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퇴고를 무진장 여러번 하셨다.


그 작가님들의 글은 확실히 가독성이 높았고, 의미전달이 분명했다. [[각] 문장은의 길이가 내용 이해[에 딱 적절한 만큼의 길이로 구분되어 있었고]가 되기 쉬울 만큼의 길이로 적절하였고]문장 하나하나의 길이[가]도 적절하고, [신경쓰이게 만드는] 눈에 거슬리게 만드는 표현이 적어 글 [내용]에 깊이 빠져들기 좋았다.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퇴고하면 조금씩 그렇게 된다는 거잖아!]그런 장점을 보면서 '퇴고'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리고 학생 수준에 머물[고 싶은]러 있으려는 [어설픈]물러터진 마음도 다잡아 브런치 작가로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퇴고에 관한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거진(첫이름: 퇴고하기 싫어)을 만들고 글을 쓰고 있었다. [첫 글을 쓰던]그러던 중 스테르담님의 '퇴고노트'에 대한 글이 피드에 올라왔다는 [알림을 보았다. 제목은 '쌓이면 필력이 되는 퇴고 노트'였다.]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글을 읽고 나서]그래서 매거진 이름을 바꿔보았다. '퇴고하기 싫어 만든 노트


'초고는 글이 아니다.' - 스티븐 킹

'어떤 유능한 작가라도 초고는 쓰레기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대작을 쓰신 [선배님]들이 말씀하셨다. 초고에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 말라고. 사실 그분들도 이런 말씀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으셨을까.  [그러나] 초고는 글도 아니고 쓰레기일지도 모르지만, 초고가 없으면 퇴고도 없다는 말씀도 참 맞다고 생각한다. [마구 써내려간 첫]처음 쓴 글에서 보석같은 것들을 주워담아 남을 살리고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 쓸 수 있도록 퇴고에 도전해보자!! 


퇴고하기 싫어?

아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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