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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Feb 17. 2021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봄 여름 가을 겨울 냇가 놀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아침 햇살이 비친다. 방문을 여니 마당에서 펌프질하고 계신 엄마가 보인다.

"엄마, 나 저기 갔다 올게."

마당에서 대문까지는 오르막길. 꼬마의 짧은 다리로 열심히 올라 끼이익 대문을 열고 강둑에 선다. 유유히 흐르는 강 건너편은 야트막한 산들이 누워있다. 아침 물멍과 산멍은 마음의 양식.


시골 강변에서 자란 소녀의 이야기다.


강은 계절에 따라 물의 양이 달라졌다. 봄엔 물가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졸졸졸 흐르다가, 여름이 오면 풍덩풍덩 헤엄칠 수 있을 만큼 불었다. 비가 아주 많이 왔던 어떤 해엔 흙탕물 색 강물이 강둑 근처까지 올라와서 무서웠다. 누구네 집 물건인지 모르지만 큼지막한 물건들이 붉은 황톳빛 물 위를 둥둥 떠내려 가는 걸 본 것도 같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서 물이 줄어들다가 드디어 겨울이 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졸졸 흐르던 물이, 오늘 꽁꽁 얼어붙곤 했다.


봄에는 민정이 언니와 모래톱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모래와 물을 반짝반짝 비춰주었다. 하루는 놀다가 돌에 긁혀서 피가 조금 났다. 언니는 모래를 붙여두면 나을 거라고 했다. 둘이서 모래찜질하며 낫기를 기다렸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강물 위에 반짝인다.


매미 우는 여름이 되면 강은 아이들로 붐빈다. 동네 애들도 있고, 시골에 놀러 온 애들도 있다. 9살쯤 되던 해, 강에 모인 아이들은 물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건지기 시작했다. 장구애비, 물방개, 물맴이, 게아재비, 소금쟁이, 물장군... 수생생물이었다. 아무 거나 눈에 띄는 걸 잡아 올리는데 모두 다른 게 걸리다니! 처음 보는 아이들이지만 '물방개다!', '장구애비다!', '소금쟁이다!' 하며 소리치며 까르르 웃다 보면 어느샌가 가까운 사이가 된다. 맑은 물 빼닮은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선선한 가을에는 강변에 핀 예쁜 풀꽃들을 따라다녔다. 이름 없는 잡초에 '별꽃'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참 구경하다 보니 해가 졌다. 가을엔 해가 빨리 진다고 물가서 놀지 말라고 어른들이 겁을 주었다. 자로라는 사람이 있는데 밤에 물가에 있으면 '내 다리 내놔라!' 하면서 쫓아온다고 하시면서! 10살도 채 안된 꼬마에겐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라 소스라치게 놀라 집으로 들어왔다. 자로가 '내 다리 내놔라!' 하면 내 껄 줘야 하나 걱정하면서.


그 많던 물이 꽁꽁 얼어버리는 겨울이 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어젯밤에 엘사가 지나간 듯 자연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져 있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 한데 아이들이 꽁꽁 언 강 위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썰매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썰매에 앉아 송곳 막대기로 씽씽. 신발 스케이트로 미끄러지며 휘잉.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끌려가며 슉슉. 하얀 놀이터 위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마음엔 무지갯빛 추억이 영근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rksindy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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