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은 백합과의 조개로 2~4월이 제철이다. 펄이 조금 섞인 모래펄 속에서 살며 수중의 플랑크톤을 걸러 먹고 산다. 소형 조개지만 성장과 번식이 빠르고 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양식이 비교적 쉽다(출처: 나무 위키). 육질 100그램에 칼슘(80밀리그램)과 계란의 5배나 되는 마그네슘(50밀리그램)이 들어 있다. 또한 생체 방어에 필요한 효소와 효소 생산에 필요한 구리도 130밀리그램이나 들어 있다. 특히 바지락은 미량원소로서 무기질 함량이 매우 높아 대사 조절작용으로 병후 원기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바지락)"
아이는 면을 좋아한다. 흰 국수를 호로록호로록 먹는다. 아무 맛도 안나는 국수를 저렇게 좋아하다니... 나는 국수면은 쫄깃하지 않아서 흐물거려서 안 좋아한다. 아무래도 국수를 좋아하는 건 남편을 닮았다. 남편은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비빔국수를 해주시면 3인분은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난 그 맛을 낼 수 없다. 남편만 기억하는 그 비빔국수를 해줄 수 없다는 게 가끔 가슴이 아프다.
아이가 생기니 요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주말에는 아이에게 밥을 해주기 때문이다. 주중에 친정엄마에게 늘 맡기지만 주말에는 내 손으로 해먹이고 싶다. 엄마라면 늘 밥을 챙기니까. 엄마 노릇이 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아마 친정 엄마가 늘 밥을 걱정하고 챙기시는 것을 봐서 그런 것 같다. 마트에 갔다. 뭐가 좋을까? 잘 모르겠다. 정육코너와 생선 코너 앞을 왔다 갔다 한다. 바지락이 있다. 바지락 칼국수가 떠오른다. 면 요리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요리법도 쉽다. 호기롭게 바지락 5천 원어치를 샀다.
"바지락은 갯벌 속에 살기 때문에 소화기관에 뻘이나 모래 등 이물질이 들어있어 이를 제거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해감이라 하는데 살아 있는 바지락을 맑은 바닷물이나 소금물이 담긴 용기 속에 30분 이상 담가 두면 입을 벌리고 이물질을 뱉어낸다. 이때 녹이 슨 쇠붙이를 같이 넣어두면 더욱 빠르게 해감이 진행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바지락을 해감하려고 소금물에 담그고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 두었다. 아침이 되었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아이는 6시 반이면 일어나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논다. 한 시간 이상 놀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배고파요~"
냉장고에 넣어둔 바지락을 꺼낸다. 크림색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그래, 너도 살아있었지. 그냥 조개일 땐 몰랐던 생명의 움직임이 보인다. 물도 찍 뱉는다. 소심하게 있던 바지락은 어두움에 용기를 내서 세상으로 나왔다. 물을 끓인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바지락이 살아있다. 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끓는 물에 넣을 것인가?
"인간과 비슷한 중앙신경계가 있는가, 고통을 주었을 때 회피 행동을 하는가 등 고통을 느끼는지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종을 늘려가며 실험했다. 인간에서 출발해 영장류, 포유류 그리고 최근엔 물고기, 급기야는 바닷가재까지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굴은 문제적 동물이다. (중략) 굴이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의심의 이득’ 원칙에 따라, 긴박한 이유가 없다면 안 먹는 게 좋다고 말한 것이다. (원문: 비건은 굴 먹어도 된다? 고통 처리하는 기관 없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 그 전에도 민감도가 낮진 않았다. 비 온 뒤 길 다니다가 기어 나온 지렁이를 종종 구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세상의 모든 생명에 대해 내가 어미가 된 듯한 생각이 든다. 세상 끝에 혹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을 아이들에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학대당하거나 고통받는 기사를 보면 며칠은 끙끙 가슴이 아팠다. 내 아이가 소중하니 다른 아이도, 다른 생명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어서, 매일매일 깨닫게 되어서인 것 같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을 먹는 것을 같은 연장 선상에 놓고 싶진 않지만 언젠간 비건이 되고 싶다. 여태 살아오면서 먹을 만큼 먹었고 고기를 먹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 속에 사는 것이 마음 아파서이기도 하다. 지구도 덩달아 고통받는다. 비건이 된다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집 식사는 어쩌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결정에 만족할까?
바지락을 놓고 한참 고민에 빠진다. 아이가 와서 신기한 듯 바지락을 본다.
"엄마 이게 뭐야?"
"바지락"
"우와~ 이쁘다~~"
바지락은 다시 조개 속으로 쏙 숨었다. 한참 바지락을 가지고 논다.
"엄마 배고파요~"
물은 아까부터 끓었다. 그냥 칼국수만 끓일까? 바지락을 넣을까 한 번 더 고민한다. 눈을 질끈 감고 바지락에게 사과한다.
'바지락아 내가 내 새끼 밥 좀 먹일게.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타닥타닥.
바지락 입이 벌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이에게 바지락 하나씩 발라준다.
"엄마 엄청 쫄깃쫄깃해!"
맛있게 먹는 아이에게 고맙다. 그리고 바지락에게 고맙다. 내 새끼 한 끼 배부르게 먹게 해 줘서.
오늘 저녁은 남은 바지락으로 뭘 해 먹지?
내 글을 읽고 조이님이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적어둔다.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105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