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동네인가 했는데 아닌가 보다. 우리는 빵집 한 켠의 테이블에 앉아 통창에 비친 밖을 내다보았다.
짐수레에 여럿 아이들을 태운 경운기가 달달대며 지나간다. 짓궂은 아이들은 묵직한 물총을 손에 쥐고 방아쇠를 연신 당긴다. 그들이 지나가자 바짝 마른 도로 군데군데, 기다란 물총 자국이 그어졌다.
운전대를 잡은 사내는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솔과 연 또래의 아이들 덩치로 보아 그는 사십 대 초중반일 것이다. 뒤를 돌아보며 환히 웃는 그의 하얀 이가 가지런하다. 심히 그을리지 않은, 매끈한 피부로 보아 타고난 농군은 아닌 듯하다. 오래지 않은 시기에 귀농하여 터를 잡은 일가족일까. 뒤에 태운 꾸러기들은 가까운 개천에 맨몸을 담그고, 멱이라도 감는지 표정이 들떠 있다. 덜컹이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몸을 곧추 세워 일어서서는, 아빠의 양 어깨를 붙잡고 흔든다. 서둘러 물놀이장으로 가자고 성화다.
- 아빠, 저기 경운기 한 대 또 지나가.
- 그러네. 앞에 가던 경운기랑 일행인가 보다.
뒤따르는 경운기 또한 개울가로 향하나 보다. 짐칸에 탄 두엇 아이들은 이쪽을 바라보며 물총을 쏘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투명한 유리창 바깥으로 방금 흩뿌려진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중 몇몇은 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린다. 솔과 연은 동글한 물방울과 사선으로 내린 흔적을 손끝으로 따라 짚었다. 혹시나 물기가 묻지 않았나 확인하더니, 그럴 리 없다며 깔깔거렸다.
- 근래에 구례로 귀농하는 이들이 늘어났는데, 우리 밀을 이모작으로 기르는 농가가 많다고 하네. 그 덕분에 질 좋은 금강밀을 자급하면서 외지인 구미를 당기는, 힙한 로컬 빵집이 늘어났고..
아내는 말을 잇다 말고 컥컥, 목이 막히는지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난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진갈색 식빵을 결대로 쭈욱 찢어서는 이리저리 살핀다. 우유랑 계란, 버터를 쓰지 않고도 이런 맛을 내다니.. 질 좋은 유기농 쌀과 우리네 밀가루의 힘인가? 목을 축인 아내는 입 안에 빵을 가득 넣고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너무 맛있어!
흑미와 밀로 빚어낸 식빵 한 덩이를 우물거리며 난 맞장구를 쳤다.
-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야. 담백하면서도 은근한 단 맛이 우러나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 방금 차린 시골집 아침 밥상에 자리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쌀밥과 똑 닮았어. 진한 커피가 물론 어울리지만.. 난 아삭한 열무김치나 시원한 동치미를 찬으로 곁들이겠어. 그러면 여기 진열된 빵들은 모조리 먹어치울 수 있겠지.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투박해도, 달달한 맛이 혀끝을 자극하지 않아도 이들은 진득한 매력이 흘러넘쳐. 매 끼니 밥처럼 먹는다 해도 쉬이 물리지 않을, 지긋한 맛을 품은 쌀빵이로군.
이런 아빠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솔과 연은 아이스크림을 반찬 삼아 빵을 먹고 있다. 빵 몇 조각을 삼키다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먹는 식으로 갈증을 달랜다. 멀리 강원 횡성의 범산목장에서 만든 유기농 아이스크림이란다. 빵집 내부에 진열된 매대에는 유기농 감자칩과 웨하스 등의 스낵류가 빈틈없이 놓여 있다. 테이블 옆 박스에는 문척에서 재배한 무농약 수박이며 햇양파가 그득하다.
정갈한 조리복을 갖춘 이모님들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빵을 굽고 있다. 감자 빵, 햇살 빵, 팥빵, 야채빵 그리고 백미/흑미/현미 식빵까지..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봉긋하게 부푼 이 빵집의 대표 선수들이 사각 쟁반에 가지런히 놓인다. 그이들은 이 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을 기다리며 뜸을 들인다. 향긋한 밥빵 내음을 풍기며 배고픈 이들을 유혹할 준비를 마쳤다.
<느긋한 쌀빵>, 녹두빛으로 칠한 여닫이 문에 다가서면 눈에 띄는 이름이다. 옆에는 '느긋한 점빵'이라 적힌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바쁜 하루에 점을 그리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자기네 빵을 맛보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구석진 시골의 구멍가게처럼 언제든 한숨 돌리러, 수더분한 이야기 나눌 요량으로 찾아들라는 속내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는 깨끗이 비워지고, 점점이 흘린 빵 지스러기만이 남았다. 그제야 알록달록한 꽃무리를 수놓은, 반듯한 테이블 보가 눈에 들어왔다. 통창에 비친 풍경을 배경 삼아 놓인 화병의 꽃가지들이 미색을 띤다. 무릇 생각이 있는 이들에게 나누고 빌려 주겠다는, 대바구니를 메운 책등과 표지가 눈에 띈다. 누군가 손수 제작한 오디오 스피커에서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 부산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모름지기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머무르고 쉴 수 있도록, 여러 모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안에 자리 잡은 손님은 우리뿐이지만, 다음 일정 탓에 계속 머무르기는 어려웠다. 혹시 남은 빵을 포장할지 몰라 받아 든 종이백은 그대로 돌려주었다. 아쉬운 마음에 미처 맛보지 못한 빵을 채울까, 가득 담아갈까 식탐이 동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모님들이 밝게 웃으며 얘들아, 다음에 또 와! 하며 손을 흔든다. 솔과 연은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반쯤 숙인다.
언젠가 쫓기는 일상이 겹쳐 여유로움을 되찾을 방도가 없을 때, 거친 세파에 휩쓸려 느긋한 하루가 간절할 무렵, 우리는 이곳을 떠올릴 것이다. 금빛 문고리를 밀고 안으로 들어서면 이모님들은 넉넉한 미소로 반기리라. 우리는 고향집 거뭇한 가마솥에서 풍기는 구수한 밥 내음을 닮은, 막 구워낸 쌀빵을 집어 들어 코를 킁킁대고 입맛을 다시겠지. 그때는 저 연녹색 종이 가방에 갓 구운, 뜨듯한 빵을 가득 채워 돌아가리라. 그런 생각 만으로 배가 부르고, 번잡한 마음이 저만치 물러난다. 불볕더위에 지친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