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곰소 염전 일대를 돌아다니는데, 구진길 삼거리 어귀에 자리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반듯한 그 건물은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고, 여기저기 북적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보통 맛집이 아닌 듯했다. 차량에 거치된 네비 상에는 '슬지제빵소'라는 이름이 표시됐다. 주위에 너른 염전과 바다, 허허벌판뿐인 곳에 유명 빵집이 자리한 것도 신기하고, '슬지'라 이름 붙인 상호 또한 독특했다.
첫날은 스쳐 지나간 그곳을, 다음날 다시 들렀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서인지, 이전처럼 인파가 북적이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쌓아 올린 듯한 건물은 벽면이 화이트톤이라 깔끔하고 시원한 기운을 뿜는다. 위세를 떨치고자 하는 고층이 아닌, 낮게 엎드린 저층 건축물이라 드넓은 염전과 푸르른 하늘, 곳곳에 휘날리는 억새밭과 잘 어울렸다.
입구를 찾아가는 중에 볕 잘 드는 사진 명당이다 싶은 포토존마다 간이 의자를 앉혀 놓았다. 아이들은 철제 의자에 앉아 브이 자를 그리거나 각자 귀염한 포즈를 취한다. 주 건물에 들어가 중앙 매대에 진열된 여러 빵들을 보니 하나같이 '찐빵'들이다. 소금찐빵은 진작에 매진되어 빈칸만 덩그러니 남았다. 매대 칸에 차곡차곡 쌓인 우유 생크림찐빵, 쑥인절미 찐빵, 크랜베리크림치즈 찐빵 등이 눈에 띈다. 일단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끌리는 대로 빵을 골라 주문을 했다. 빵과 음료를 맛보려면 야외 정원과 별도로 마련된 복층 카페로 이동해야만 한다. 사방에 펼쳐진 곰소 염전과 가을바람에 날리는 억새밭을 바라볼 수 있는 2층 루프탑 공간은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출입이 불가한 상태다. 다음에 다시 들려야만 하는 명분이 생겼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인 한겨울에 이곳을 찾아 2층에 오르면 눈부신 순백의 풍광에 눈 호강을 하겠다 싶다.
카페 1층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아도 그리 답답하지는 않다. 훤하게 뚫린 하늘과 마주 보는 2층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개방감이 만만치 않다. 외벽을 대신해 널찍하게 뚫린 통창은 일체의 티 없이 투명하다. 안팎의 구분 없이, 밖의 수려한 풍경과 부신 자연광을 그대로 실내로 끌어들인다. 자연경관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빌려온 '차경借景'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곳곳에 깔린 리클라이너 소파에 편안히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과 초록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느긋하고 나른한 기분에 이대로 잠을 청할까 싶지만, 탁자에 놓인 다채로운 찐빵들이 졸음을 멀리 물러나게 한다.
흑미로 만든 거뭇한 찐빵을 먼저 맛본다. 두툼한 빵 사이에 송송한 파와 베이컨을 조각조각 썰어 넣은 생크림이 가득이다. 언뜻 보기에 느끼해 보이지만 알싸한 파의 풍미가 이를 상쇄했다. 찐빵은 푸석하지 않고, 쫄깃한 데다 찰기가 넘친다. 빵 반죽에 곰소 소금으로 간을 맞췄는지 미묘한 짠맛을 품었다. 덕분에 물리지 않고 계속 손이 가게 하는 매력을 지닌, 유니크한 찐빵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슬기제빵소'가 왜 곰소 염전 곁에 자리할 수밖에 없는지, 가난에 내몰린 절박한 상황에 간판에 딸 이름을 걸고 솥 하나로 시작한 이 빵집이 부안군의 트렌디한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몇몇 찐빵들의 맛에 감탄하면서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찍 품절된 이 집의 대표 메뉴인, 크루아상을 닮은 '소금 찐빵'을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역시나 이곳에 재차 들러야 할 구실이 추가된 셈이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솔과 연은 '몽블랑 아이스크림'에 단단히 홀렸다. 공주 맛밤과 국산 팥을 주재료 삼아 소바 아이스크림 형태로 가닥가닥 뽑아서는 막사발에 수북이 담았다. 몽블랑 정상에 올린 통팥과 밤 앙금 위로 금박 가루까지 뿌려 정성을 더했다. 한 수저 떠올려 맛을 보니 진하고 고소한 팥과 밤의 맛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식탐을 부려 몇 숟갈 더 손을 대면 아이들과 선의 눈총이 따가울 듯해 간신히 참았다. 다음에는 가격이 다소 만만한 '곰소소금 콘아이스크림'을 골라도 달콤 짭짤한 맛에 취할 수 있겠다 싶다.
질 좋은 국산 원료로 만든 단짠 아이스크림도 맛을 보라 권하고 싶어요 ^^
아내가 맛보는 '흑당소금커피' 또한 단짠단짠의 맛에 제대로 빠져들 수 있다. 테킬라 술 한 잔에 안주 삼아 소금을 찍어 먹는 것처럼, 달달한 흑당 라테 한 모금에 곰소염전에서 채취한 천일염을 입술에 묻혀 천천히 녹여 먹으면.. 혀를 자극하는 강렬한 맛에 절로 눈이 감기고 여기가 진정 천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쟁반에 수북하던 찐빵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절묘한 맛을 자랑하던 아이스크림과 커피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카페의 통창 너머로 비치는 햇볕이 황량한 소금밭에 황금빛 가루를 뿌릴 때쯤, 선은 서둘러 일어서더니 카운터로 향했다. 둥근 유리잔 테두리에 곰소소금 결정이 톡톡 맺힌, 단짠 라테를 한잔 더 맛보지 않는다면 집에 돌아갈 수 없다며, 평생 후회할 거라며 혼잣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난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통창을 뚫고 쏟아지는, 곰소만 쪽빛 바다를 이은 9월의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셔서 난 가름한 실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