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시 아빠단' 활동을 하면서 미처 개봉하지 않은 집콕 박스 선물들을 열었다. 그동안 솔과 연이 해보고 싶다! 아빠, 언제 할 거예요? 하고 보채고 졸랐지만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했고.. 어쩌면 내 게으름 탓에 차일피일 오픈을 미루기만 했다. 날씨가 완연히 따뜻해진 봄방학이 시작되어서야 아이들의 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다양한 캐릭터와 꽃, 과일 등이 전사된 스티커를 물에 불려 유리컵에 붙여 본다. 스티커가 꽤 많아 포함된 유리 머그잔 하나로는 양에 차질 않았다. 수납장을 뒤져 기다란 맥주잔 두엇과 깨끗한 머그컵을 꺼냈다. 남는 스티커들로 꾸며 보라,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사이사이 색색깔의 유성 펜으로 강아지며 냥이, 다람쥐를 그린다. 길게 양갈래 머리를 땋은 여자 아이를 그리기도 했다. 솔과 연은 각자가 공들여 꾸민 유리잔을 높이 들어 환한 조명에 비춰 보고는 좌우로 돌려 본다.
- 아빠, 우리가 만든 컵들.. 설거지하다가 와장창 깨 먹으면 안 돼!
요즘 들어 손에 기름칠을 했는지, 아니면 손힘이 떨어졌는지.. 설거지하다가 미끄덩, 그릇들을 놓쳐서 자주 이빨을 나가게 하고 동강을 내는 아빠한테 주의를 준다. 그나저나 이 스티커들은 겉면에 물이 닿아도 떨어지지 않는지 궁금하다. 바라보는 장식 용도로 고이 보관해야 하는지, 아니면 애용하면서 하나둘씩 물살에 사라지는 걸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잠시 고민 끝에 완성한 컵 네 개 중 절반은 찬장에 모셔두고 나머지는 마음껏 사용하라고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마지막으로 수제 비누를 만들어 본다. 특이하게 다른 컬러를 곁들여 투 톤의 그라데이션 비누를 만들기로 한다. 종이컵에 단단한 비누 재료를 담아 전자레인지에 30초 가까이 돌리면 몽글몽글 녹는다. 상큼한 향의 오일 베이스를 방울방울 떨구고 잘 섞는다. 아이들 마음 가는 대로 파랑과 노랑, 보라와 초록, 빨강과 화이트 등 여러 색을 조합하여 몰드 틀에 비누액을 붓는다. 말랑한 틀에 부은 비누는 찰랑이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만약 흔들리면 비누 표면이 비틀리고 쭈글 해져 이쁘지 않다고 한다. 서늘한 곳에서 하루 정도 식히고 굳히면 산뜻한 시트러스 향이 물씬 풍기는 매끈한 비누가 탄생한다. 비닐 포장에 각각 담으니 당근 마켓에 내놓아 판매해도 될 정도로 그럴싸하다. 아이들 세안 용도로 화장실에 놔두거나, 여름철 꿉꿉한 날씨에 방향제 용도로 옷장 구석에 놔두어도 좋을 듯하다.
지난 한 주 동안 아이들이 유리컵에 아기자기한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의 비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앞장서서 주도하기보다는, 아이들이 고심하여 만들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미니 레고 블록 같은 경우 둘째 연이 설명서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이해가 안 된다 하길래 내가 대신 조립해 주었다. 자그마한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다 보니, 나 자신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만사 제쳐 두고 집중하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네가 완성해 볼래? 아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은 쉽지 않은가 보다.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한 손을 들어 인사하는 산타 할아버지 형상의 레고 완성품을 아이에게 선물했다. 우와, 아빠 고마워요! 아이는 신기하다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 산타 블록을 요리조리 살핀다. 나중에 만들 수 있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라고 조립 매뉴얼을 보관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합심하여 뭔가를 만든다는 건 즐겁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고, 내내 골똘히 집중해야 하기에 의미가 깊다. 언젠가 솔과 연은 향기로운 비누 거품을 하얀 손등이며 동그란 콧등에 묻히고는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아이들은 키득거리다가 참지 못해 깔깔, 웃음을 터뜨리겠지. 다가오는 한 여름, 색색의 스티커로 장식된 유리컵에 물을 담아 마시며 타는 갈증을 달랠 것이다. 어쩌면 고무장갑을 끼고 유리컵을 깰까 봐 애지중지 조심스레 설거지를 하는, 엉거주춤한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시간이 흘러 몇몇 블록이 어딘가로 사라진, 손때 묻은 산타 할아범 레고를 만지작 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