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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Jun 04. 2024

그의 삶은 재즈 그 자체였다

을유출판사, 제임스 개빈_<쳇 베이커> 전기를 읽고..









내 가슴이 얼마나 타오르고 있는지 당신은 알지 못하죠.

이 사랑은 결국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사라지지도 않을 거예요._278p






한 예술가의 삶과 음악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세밀히 다룬 책이 있을까? 

모던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트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 쳇 베이커의 생애를 다룬 제임스 개빈의 <쳇 베이커>.

부제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주름지고 그늘진 노년의 쳇 베이커가 눈을 감은 채, 빛나는 트럼펫을 감싸는 표지 사진이 비극을 예고한다.


쳇 베이커는 부친으로부터 천부적인 음악 재능과 직관력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난폭하고 쾌락에 휘둘리는 기질까지 그의 생을 지배했다. 젊은 시절 그는 반항적인 곱상한 외모와 로맨틱하면서 강렬한 트럼펫 연주로 '재즈 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종잡을 수 없으면서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즈 플레이, 친근한 성격에 때로는 터프한 행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가 마약에 손을 대면서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라이브 공연의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한 도피처였을까? 아니면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폭력성이 마조히즘적인 자학성으로 폭발했는지 모른다. 제임스 개빈은 재즈 계의 아이돌로 등장해 최정상의 지점에 올랐다가 내리막을 그리며 바닥으로 추락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굴곡진 삶을 생생히 기록한다. 





그의 곁에 머무르고 스쳐간 수많은 재즈 음악가들, 가족/지인들, 연인들의 족적, 코멘트를 따라가며 쳇 베이커의 삶을 진실에 가깝게 고증하고 재구성한다. 오랜 마약 중독과 과용에 따른 후유증으로 그는 길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무수한 앨범과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말년까지 끈질긴 예술혼을 불태웠다. 덕분에 그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위험천만한 삶을 재현한 전기는 10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필요했다. 허나 베일에 가려진, 은밀하면서 신비한 그의 이면을 낱낱이 들춰볼 수 있기에.. 광기 어린 천재의 급격한 하락세를 감상한다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자극하기에(모차르트의 파멸을 지켜보는 살리에르처럼..), 우리는 수월하게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


쳇 베이커. 그가 금빛 트럼펫을 곁에 두지 않았다면, 부드러운 나긋한 목청으로 연가를 부르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졌을 테고, 더 일찍 생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예측 불가한 리듬으로 천상과 지옥을 오가는 삶을 살아낸 그는 재즈를 통해 그리운 고향에 다다랐다. 말년의 그는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는, 산송장에 가까운 상태였음에도 일말의 자존심과 공포마저 내려놓은 채, 끝내 트럼펫을 놓지 않았다. 그의 찬란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에서 비탄을 금치 못하리라. 



          



책을 읽으면서 소장한 쳇 베이커의 여러 음반을 시대순, 맥락에 맞추어 플레이했다. <My Funny Valentine>, <Blame it on my Youth>, <These Foolish Things> 등등.. 서정성 넘치는 수많은 명곡들이 심금을 울린다. 누적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이른 죽음을 예감하는 것처럼.. 후기 음반으로 갈수록 다른 연주와 불협하고, 기력이 쇠하는 그의 트럼펫 연주에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의 가냘픈 날갯짓과 떨리는 음성은 최후까지 지속되었고, 영원을 향하는 것처럼 귓가에 남았다. 

난 책을 덮고 그가 남긴 유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무거운 날개를 벗고 천상에 올랐다. 어디선가 들리는 청명하고 우렁찬 트럼펫 소리.. 쳇 베이커는 재즈 그 자체의 삶을 살았고, 죽음 또한 그러했다.







My Funny Valentine · Chet Baker · L. Hart · R. Rodgers Chet Baker Sings>>

https://youtu.be/QuMzUXPEPRM?si=EOaj_Ov56qbGjJ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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