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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Jun 11. 2024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보이지 않는 세계

그레고리 J. 그버_<보이지 않는>을 읽고..









어릴 때 SF의 창시자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 인간>과 이를 영화화한 여러 작품들을 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주변에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집에 몰래 들어와 도둑질을 일삼고, 우리 일상을 몰래 훔쳐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어디든 갈 수 있겠네 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허나 치기 어린 상상은 거품처럼 삽시에 터졌다. 인간 혹은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은 시기상조인 데다, 단기간에 실현이 어려움을 깨달으면서 '투명 인간'은 SF 소설 속의 허상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바야흐로 세상은 광속으로 탈바꿈하고, 과학은 우리를 광활한 우주와 인터넷/AI의 세계로 차원 이동시켰다.


물리학/광학 교수이자 SF 애호가인 '그레고리 J. 그버'는 저서 <보이지 않는>을 통해 투명 인간의 실현 가능성에 주목한다. 18세기 무렵부터 여러 과학자들이 무수한 시행착오와 시도 끝에 발견한 빛과 소리, 전자기, 양자 역학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굴절,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전자기장, 주기율표 등 학창 시절에 접한 익숙한 용어들이 새삼 반갑다. 아이작 뉴턴, 맥스웰, 토머스 영, 아인슈타인, 페러데이, 닐스 보어, 막스 보른 등 물리학, 화학, 의학 등을 넘나드는 쟁쟁한 학자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저자는 또한 과학자들이 예견하지 못하는 저 너머 세상을 상상하고, 미래 세계를 문장으로 축조한 예지적 작가들의 작품을 소환한다. SF 작가들이 작품 속에 구현한 이론과 서사가 후대 과학자들이 논리적으로 실증한 성과와 놀랄 만큼 유사함을 거론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그리는 허구적 상상과 실존하는 구체적 현실은 동떨어진 별개의 세계가 아닌, 유사한 맥락으로 소통하고 상호 발전하는 하나의 광활한 우주임을 깨닫게 한다.  





근 2세기 동안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하면서 불투명하고 무질서한 사물의 이치를 증명 가능한 수학적/논리적 이론으로 정립하고, 실생활에 응용하는 과정은 인류 문명의 폭발적인 확장과 혁신을 촉발시켰다. 현재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엿보고, 화성을 제2의 터전으로 확장하려 발을 내딛고 있다. 광속으로 질주하는 무선 전자기파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무한대의 가상 세계를 확장하고, 이를 지배하는 인공 지능/로봇을 업그레이드 중이다. 우리는 이제 명확히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에 주목한다. 


거대한 물질적 파동이라 할 수 있는 지진과 해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정 영역을 완충물질로 감싸 그 충격파를 보이지 않게 최소화하고 무력화시키는 연구가 이제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급속한 과학의 발전은 밝고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반대급부적인 암울하고 그늘진 이면을 넓히기 마련이다. 일찍이 제임스 돌턴,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 에드먼드 해밀턴, 앰브로즈 비어스, 필립 와일리 등 선지자에 가까운 SF 작가들이 결코 실현되지 말아야 할, 디스토피아로 빚어낸 파멸적 재앙이 우리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프레데터>의 기괴한 외계 생물체처럼 언제든 전신을 투명 물질화시키는 특수 요원들. 적대국과 라이벌 기업의 기밀 정보를 훔치고, 요인을 무차별 암살하는 클로킹(투명) 스파이, 킬러와 지하 벙커까지 침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드론 무리가 암약하는 시대. 


빛을 파괴/우회하여 자신의 존재를 변형하거나 감추어 개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무법/무정부 투명시대가 도래하는 건 아닌지.. 우리는 던져진 주사위의 여러 면을 살피는 것처럼 다가올 미래를 다각도로 상상하고, 예측되는 위험에 대응하는 현명함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레고리 J. 그버가 <보이지 않는>에서 시도한 것처럼, SF 문학과 첨단 과학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상호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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