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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Jan 22. 2019

주간 ㄱㄷㅎ 1-3

14.

주말 광화문에 갔을 때 본 풍경이 계속 생각난다.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날이었지만 광화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애국보수(애국도 보수도 아닌 집단이지만, 그렇게 불리는) 집회가 열리는 곁에서, 안전의 외주화를 반대하는 집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애국보수 집회에서는 '문재인을 죽이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지만, 경찰들은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련 위력을 가하지 않았다. 그 옆에서는 개신교 관련 사람들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고, 곁에는 콜트 노동자의 농성 천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애국보수 집회 때문에 통제된 도로에서 광화문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것이 혼돈으로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야 애국보수 집회의 사람들이 정말 끔찍하게도 싫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그들 자신이 내고 싶은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한국 사회가 정말 건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차벽도, 물대포도 없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권리라는 것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았다.)

15.

지난 금요일에 핸드폰을 바꾸고, 주말에 인터넷 쇼핑으로 케이스를 주문했다. 월요일에 발송이 되었고, 오늘 일하는데 도착 완료라는 메시지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가서 문앞을 봤는데 택배 상자가 없었다. 왜 안왔는지 어리둥절해하며 주문 내역을 살펴보는데, 알고보니 그만 실수로 전에 살던 집을 주소로 입력해두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전에 살던 집까지는 편도로 1시간이 걸리는데... 어떡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옷을 입고 나왔다. 그 길로 전에 살던 집을 향해 출발했다. 더 늦으면 다녀오지도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택배는 전에 살던 집 앞에 놓여져 있어서 조용히 상자를 챙겨서 들고 왔다. 사실 작년에도 한 번 실수로 택배를 그곳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아마 그때 일을 기억하고 현재 집주인이 내 택배를 그냥 문 앞에 둔 모양이었다. (알아서 찾아갈거라고 생각한 듯...)

아무튼 야밤에 2시간 동안이나 이렇게 뻘짓(...)을 하게 되었다. 고향도 서울이 아니고, 그냥 직장따라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의 집에서 이사를 가면서 이제 이곳에 올 일이 딱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1년새 두 번이나 방문을 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인터넷 쇼핑 사이트 회원 정보를 수정하려고 보는데, 지금 사는 집 주소로 잘 바뀌어져 있다. 알고보니 쇼핑몰에서 과잉 친절로 내 회원 주소상 주소가 아닌, 마지막으로 주문을 했던 주소로 자동 입력을 해줬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꽤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일을 겪을 때면 그런 생각이 쏙 사라진다. 일찍 퇴근한 게 무색한 피곤한 하루였다.

16.

침착맨의 유튜브에서, 본인이 편의점 알바를 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는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책을 많이 봤는데, 여동생의 영향을 받아 일본 소설을 많이 봤다는 얘기를 했다. 본 소설들을 말하는데 나오는 이름이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등...

아마 내가 재수를 할 때 ~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의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2005년 전후), 나도 당시에 일본 소설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때 생각이 났다. 동일한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때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일본 소설들이 읽기 편하고 재미가 있어서 많이 읽었다. 

그리고 다음은 도피를 위해 읽었다. 당시 나는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닌,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썩 좋지 않았다. 그 막연함이 무척 두렵게 느껴졌다.(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지만)  재수 끝에 대학에 가긴 했지만, 거기서도 대학 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다. 그래서 현실 속 내가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 소설 속으로 도피를 했다. 그 말랑말랑한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은 현실을 잊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도, 사는 것도 많이 바뀌게 되면서 요즘은 일본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사실은 소설 자체를) 그래도 추억은 추억인지 침착맨의 영상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이발을 하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며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았다.(닥터 스트레인지) 작년에 본 첫 영화는 10월이었는데(...) 올해는 연초에 벌써 첫 영화를 보게 되었다.

17.

회사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급 벙개로 치킨+맥주를 마시러 갔다. 간단하게 마시고 8시쯤 집에 갔는데, 어쩐지 치킨이 좀 싱싱하지 못해서인지 속이 영 좋지 않았다. 

더불어 치킨 기름 냄새가 옷에 베어 한동안 빠지지도 않는다. 

18.

얼마 전 <인포그래픽 데이비드 보위>라는 책을 읽다 티렉스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마크 볼란'의 생일이 나와 같은 9월 30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데이빗 보위와 마크 볼란은 절친) 물론 1년이 365일밖에 없고,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생일이 겹치는 것 정도는 별 일 아닐 수 있다. 단순히 계산해도 3,650명이 모여 있다면 그 안에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10명은 있는 것이니.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감성적으로 따지면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개성 넘치는 예술가라면 꽤나 특별한 기분이 든다. 티렉스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 티다의 생일도 나와 같다. 신기해서 찾아보니 작가인 라우라 에스키벨의 생일이 9월 30일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의 생일을 아마 자신의 생일에서 따온 듯했다.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우연들은 무언가 나를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게 한다. 별 것 아니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한다. 피곤한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귀여운 길냥이처럼. 

19.

나이탐험가(이석원 작가)님의 추천글을 보고 영화 '그린북'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린북의 배경이 지금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그리는 흑인과 백인을 '소수자'와 '다수자'로 치환하면 그 영화가 그리는 시대상은 지금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말들 중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이 있다. 첫 번째는 'PC충'이라는 이야기. 자신들이 소수자에 속하지 않는다고 소수자에 대한 옹호를 비웃는 게 쿨한 거라면 나는 쿨하지 않고 싶다. '과도한 평등' 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도 모순이 된다. 다음으로는 '그게 왜 ㅇㅇ 혐오죠?'라는 말이다. 소수자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것은 불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소수자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수자들의 기분을 결정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폭력이다. 가해자는 결코 피해자를 판단할 수 없다. 

아마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인이 백인의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흑인이 백인과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부조리를 느끼며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영화관을 나와서는 맘충과 페미니즘, 성수수자들을 욕한다. '그건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그렇게 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같은 말들로.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이 대체 얼마나 더 큰 차별을 받아야만 그들의 불만이 당위성을 갖게 될 것인가. 

20.

약속이 없어 집에서 쉬며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밤 10시에 자서 일요일 8시에 일어나곤 낮잠도 두어시간을 잤다.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왔는데, 피로라는 게 쌓여서 그랬나 싶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어제 본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그냥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좋아하는 영화나 장르는 있긴 하지만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영화에 이렇게 할 만한 취향 혹은 판단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 내가 영화를 많이 보거나 향유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책이나 음악, 만화의 경우는 분명한 나만의 취향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은 책, 음악, 만화를 금세 판단하곤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내 취향에 대해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어떠한 것에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곧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영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문화적 코드 뿐만 아니라 음식, 운동 등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 같다. 별다른 취향이 없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이번 주의 개똥철학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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