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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Feb 26. 2019

주간 ㄱㄷㅎ 1-5

28.

트위터에서 인상깊게 봤던 글들 중 "나는 혹시 심한 악취가 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이라면?" 이라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비슷한 맥락의 상상을 잠시 해봤는데 정말 끔찍했다. 일테면 회사에서 직원들이 한 입을 모아 욕을 하는 "또라이"가 나인데, 그걸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사실 이와 비슷한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내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혹시 내가 정말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라는 것이다. 회사 사람들 사이의 인간 관계야 기본적으로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누구든 어떤 얘기를 했을 때 갑분싸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렇고. 거기에 더해 좀 어색한 사람들과 있을 때도 입을 닫고 있기 보다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면 더 어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나는 어쩌면 진짜 재미없는 얘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이 왜 문제나면 나는 스스로를 '나름대로 재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없는 사람의 특징'은 '스스로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나(되고 싶은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괴리를 느낄 때마다 괴로운 것은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 것 같다.

29.

교무금 통장이 나왔고, 세례식 때 찍은 사진이 인화되었으니 성당을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가 끝나고 바로 성당에 허겁지겁 갔는데, 사무실 문이 잠겨있었다. 아마 6시 이후로는 닫는 듯했다. 사무실 앞에 멍하니 서 있는데 성당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미사를 진행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쉬운 대로 미사에 참여하자는 생각에 급히 성전에 올라갔다. 사실 지난 2주간 미사를 드리지 않아서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주일은 아니지만 평일 미사라도 참여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큰수녀님을 뵈었다. 수녀님께서는 내가 첫 고해를 받지 않은 것을 기억하시고는 주말 중에 나와서 받으라고 하셨는데, 일요일 오전에 가서 첫 고해를 드리기로 하였다. 

성당을 나와 집에 가며 10대나 20대 시절에 어떠한 종교에 소속되어, 꾸준히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30대도 물론 사람은 계속 바뀌겠지만, 10대나 20대처럼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으니)

30.

조카들이 어린이집에서 근처 경로당에 세배를 드리러 갔더니, 어르신들이 귀엽다고 아이들에게 5천원씩 세뱃돈을 주셨다고 했다. 귀여운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도 조카 3명에게 각 1만원씩 세뱃돈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회사 동료 실장님이 그래도 선물을 사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해주셨다.

본인도 아주 어릴때를 기억해보면 세뱃돈을 받은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모가 본인을 데리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여준 것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친척 어르신 한 분이 중학생 때 해리포터를 영화관에서 보여준 기억이 났다. 심지어 영화를 본 뒤 돈까스를 먹은 것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 얘기를 듣고는 급히 인터넷을 찾아보고 조카들을 주려고 장난감을 주문했다. 다행히 명절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택배가 무리 없이 도착할 것 같다. 대단치 않은 별 것 아닌 선물이긴 하지만 그것을 주는 내 마음의 행복과 조카들의 마음의 행복을 상상해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31.

명절 때 집(본가)에 가서 무얼 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새삼 그런 것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왜 그런 것을 미리 생각해야 하냐면 본가에 가면 심심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부터 산 집인데(중2때 같은 집 터에 새로 집을 짓긴 함) 나와서 산지 몇 년 지났다고, 이제 본가가 자취방만큼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자취방에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는데, 집에만 내려가도 할 일이 없고 심심하게 느껴지니...

아마 이제 진짜 내 집을 서울에 있는 자취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본가까지는 시외버스로 1시간 반이 걸리는 멀지 않은 곳인데, 점점 집에 가는 텀은 넓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갔던 게 추석때였음;;) 

아무튼 그런 맥락에서 잠깐 고민해서 결정한 개인적인 설 연휴 목표는 <총, 균, 쇠>를 연휴 동안 다 읽는 것인데, 사실 막상 내려간다면 아마 그냥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다시 서울에 올라오게 될 것 같다. 

1.

조기 퇴근의 예감으로 이번 주는 금요일 일을 주중에 틈틈이 나누어서 했다. 남은 일을 오전에 빠르게 처리하고 나서 1시가 좀 넘으니, 예상대로 부서장님의 화끈한 조기 퇴근 통보...!! 미리 일을 해 두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는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그냥 누워서 과자 먹고 있는데 잠이 와서 자고 일어나니 저녁시간. 저녁 먹고 시간을 좀 보내다보니 밤이었다. 연휴도 긴데 연휴 전에 또 꿀같은 휴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어쩐지 밤에 오늘이 토요일인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금요일마다 1시에 끝나는 파격적인 곳이었는데, 그때 기억도 좀 났다.) 

어쨌건 설 연휴의 시작을 기분 좋게!

2.

원래 여자친구와 주말을 좀 활기차게 보내는 편으로, 주말엔 되도록 많이 걸어다니면서 이것 저것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주 정도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좀 정적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보냈던 게 아쉬워 여자친구에게 이번 주는 좀 활기차게 보내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야심차게 일어나서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집안일(청소, 빨래)을 하면서 1차적으로 활기차게 보내고, 여자친구를 만나서는 여자친구의 볼일을 보기 위해 이곳 저곳을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인지 땀도 조금 흘려가며 서울 시내 이곳 저곳을 누볐다. 볼일을 다 보고는 명동성당에서 7시 미사도 보았다. 

(점심, 저녁도 모두 제대로 된 메뉴를 사먹으며 밥도 든든히 먹었다.)

미사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은 어쩐지 무척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뿌듯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충실한 하루를 보낸 날은 유독 잠자리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3.

오랜만에 종일 비가 내리는 하루였다. 이번 겨울은 눈이나 비가 유독 적다. 이렇게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무척 간만이었다.

천주교 예비신자 반에서 함께 드리는 첫고해(지난달 말)에 참석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성당에 가서(오전 8시 반) 개인적으로 따로 첫고해를 드리고 왔다. 성당의 큰수녀님께 간단히 고해성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첫 고해성사를 드렸다. 어느덧 천주교 7성사 중 3번째 성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세례 - 성체 - 고해)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가끔씩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입 안의 가시처럼 까끌까끌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신앙심에 대한 의문은 신부님조차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한다. 그러니 고작 1개월이 조금 넘은 꼬마 신자에게는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어쨌든 작년에 한 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고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종교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면 늘 주말에 미사를 드리고 나왔을 때의 설명할 수 없는 평화의 상태를 떠올리곤 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 마음과 감정이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한 믿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고향에 내려갔다. 설날이 연휴 뒤쪽에 있어서 이번에는 고향에 조금 늦게 내려간다. 아마 일~화 사흘동안 집에서 지내다 올라올 것 같다. 우등버스가 전부 매진이어서 일반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정말 운 좋게도 옆자리에 사람이 타지 않아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향까지는 버스로는 평소에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차가 좀 막혀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집에 가서는 밥을 먹고 티비를 좀 보면서 쉬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보니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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