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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Feb 26. 2019

주간 ㄱㄷㅎ 2-1

4.

본가에 도착한 연휴 두번째 날.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하며 누워있는데, 엄마가 부침개를 하려고 준비하는 소리를 듣곤 거실로 나갔다. 



친가쪽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명절 때 큰집에 가지 않은 게 벌써 4~5년도 넘은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누나가 결혼을 한 뒤 아이를 셋이나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가족-친족의 중심이 '아버지의 가족'에서 '우리 가족'으로 옮겨오면서 큰집에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큰집에 안 가니 가족 모두가 행복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차례나 제사도 지내지 않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엄마는 명절 때마다 나와 누나 가족이 온다는 이유로 명절 음식을 꼭 하곤 한다. (그냥 대충 먹거나 외식하자고 해도 꼭 함 ㅠ) 명절 음식을 할 때면 내가 꼭 돕는 편인데, 이번에도 엄마가 한창 준비하고 있길래 나가서 부침개 부치는 일을 했다. 약 2시간 정도 동안 엄마가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열심히 부쳤다. 

(물론 엄마가 재료 준비 등등 대부분의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은 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도와드려서 뿌듯했기 때문에 기록한다.) 



그리고 남은 하루는 백수시절처럼 보냈다. 아침에 잠깐 부침개 부치는 일을 하고 나서, 집 근처를 산책하며 운동도 좀 하고 난 뒤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한 후 점심으로 떡국을 먹고 낮잠을 자다 일어나니 저녁 먹을 시간. 다시 밥먹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다보니 또 잘시간이어서 또 잤다. 

잠을 자도 자도, 또 잠이 오는 거 보니 본가가 편하긴 한가보다.




5.

아침에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간단히 성묘를 다녀온 뒤 운동을 하고 씻고 나오니, 외갓집 식구들 몇이 왔다. 성묘를 갔다가(우리 집 근처에 외할아버지 산소도 있음) 우리 집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의 근황도 듣고, 스트레스 받는 얘기도 서로 간단히 나누었다. 

(명절은 한국에서 가족과 친척들이 서로에게 과연 좋은 영향이라는 것을 줄 수 있긴 한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외갓집 식구들이 가고 나서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자다 일어나서 뒹굴거리고 있으니 조카들이 왔다. 시댁에서 오전에 출발한 누나가 도착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조카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기뻤다. 세뱃돈 대신 미리 사 둔 장난감을 나눠주니 약 20분 정도 신나게 가지고 놀다가 스마트패드를 하러 갔다. 새삼 '장난감 <<<< 넘사벽 <<<< 패드'의 법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본 조카들은 정말 많이 커 있었고 또 사랑스러웠다. 

(한복을 입은 조카들이 너무 예뻤다.)



저녁을 이르게 먹고는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연휴의 마지막 하루 정도는 내 집에서 쉬고 싶어서,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6시 40분차를 탔다. 올라가는 길에도 우등이 매진이어서 일반 버스를 탔는데, 이번에도 운 좋게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편히 앉아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귀경길 정체가 정말 역대급이어서 공주에서 서울까지 무려 4시간이 걸렸다.(평소 1시간 30분) 3시간 정도가 넘어가자 앞뒤에서 터지는 탄식과 한숨에 나까지 심란해졌다. 결국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좀 덜 된 시간이었는데... 정말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특히 멀미가 너무 나서 정말 힘들었음.)



버스에 탄 초반부에 멀미가 안 날때는 영화 <땐뽀걸즈>를 보았는데,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땐뽀걸즈>는 거제시를 배경으로 한 여자 상업 고등학교의 댄스 스포츠 동아리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보면서 지방 소도시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지방 소도시의 지난하고 궁핍한 삶은, 대도시의 사람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함이 있다. <땐뽀걸즈>는 그것을 너무도 잘 담아냈다.


나도 지방 소도시에서 유년~청년기를 보냈고, 그러다 대학에 가며 대전에 살게 되었다. 취직을 하고 나서는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6년차가 되었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서울에서 가진 것이나 일군 것은 그리 대단치 않지만, 아직도 나는 새삼 내가 쌓아온 것들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어렸을 적 삶을 생각하면 정말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땐뽀걸즈>는 지방 소도시,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데, 여기서 등장 인물들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그 구질구질한(비하적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내가 느끼는 바가 그랬다.) 삶을 경험적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그 모습에 아름다운 청춘 스토리 혹은 사제지간의 따스한 정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멋지고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뒷맛이 결코 담백하지는 않았다.




6.

연휴의 마지막 날은 여자친구를 만나 종로에서 시간을 보냈다. 먹고 싶은 게 있어서 북촌까지 갔는데, 연휴여서 가고 싶은 식당들이 문을 많이 닫아서 아쉬운대로 비엣콴에 가서 오랜만에 분짜를 먹었다. 아주 오랜만에 비엣콴에 방문한 것이었는데, 분짜가 별로 맛이 없어져서 앞으로 또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밥을 먹고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전을 보러 갔다. 전에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도 찾아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보기로 했다. 운 좋게도 설 연휴 동안은 입장료가 무료여서 입장료 없이 볼 수 있었다. 전시가 무료다보니 사람이 무척 많았다. 입장부터 줄을 서서 입장했고(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내부에도 사람이 많아 쾌적하게 관람할 수 없었다. 새치기도 좀 있었고, 촬영이 금지였음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돈을 안 내고 봐서 이런 것 같다. 돈을 내고 봤으면 사람들이 조금 더 질서를 잘 지켰을 것 같다"고 했는데, 여자친구는 "원래도 그럴 사람은 그런다"고 했다.



아무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의외로 전시가 너무 알차고 뒤샹의 핵심 작품들도 많이 있어서 정말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의 핵심 사고(개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뒤샹의 작품 세계를 잘 볼 수 있었고, 그가 어떠한 고민를 거쳐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갔는지를 알 수 있도록 잘 구성된 전시여서 그런지 전시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 뒤샹전 전까지는 뒤샹에 대해 단순히 '샘'이라는 작품 하나만 알고 있었다면, 이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여자친구 덕분에 이런 저런 전시를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전시를 가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고 감사하다.



연휴 내내 쉬다가 오랜만에 활동해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공주에서 서울에 올라오는 동안 오래 버스를 타서 그런지 집에 돌아가는 길은 유독 피곤했다.



7. 

어제 저녁은 오늘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굉장히 울적했는데, 막상 출근길에는 마음이 가벼웠던 것을 보면 역시나 쓸데 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일요일을 일요일로 즐기고, 월요일은 월요일로 받아들이며 현재를 사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월요일은 아니었지만)



출근을 하려고 지하철 역에 갔더니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들로 승강장이 가득찼다. 알고보니 2호선 전철이 고장나서 그랬던 것이다. 연휴가 끝난 첫날 아침부터 고장이라니. 낑겨서 타고 뛰어서 타고 했더니 다행히 출근시간을 2~3분 남기고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전 내 쌓였던 일을 바삐 처리하고 점심에는 오랜만에 커피숍의 커피도 마셨다.



회사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휴 이후 이렇게 돌아와서 '당연하게 출근하고 일을 하고 돈 벌 곳이 있다'는 것에는 새삼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8.

긴 연휴를 지나고 평일 근무가 이틀뿐이어서 어제 오늘은 업무로 특히 바빴다. 이런 저런 일들을 빠르게 처리해서 다행히 야근은 하지 않았지만, 쉴 틈 없이 일했던 탓에 집에 가니 어쩐지 무척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연휴 전부터 식탐이 올라 명절까지 이런 저런 음식을 많이 먹고 활동은 덜했더니 몸무게도 1~2키로 정도 쪄 있고 몸도 둔한 느낌이 든다. 오늘부터 다시 음식 조절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참지 못하고 과자를 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자가 너무 맛이 없어서 좀 먹다가 버렸다.

(정말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9.

여자친구가 갑작스레 할 일이 생겨서 오늘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휴일이었다. 집안일을 한 뒤 여유롭게 운동을 하고, 여자친구가 미안한 마음에 시켜준 배달 음식(삼겹살 구이 세트 도시락 - 정말 양도 많고 맛있었다.)을 먹고 씻고 나오니 어느덧 오후 2~3시. 혼자 적적하게 주말 시간을 보낼 것 같았는데 벌써 오후다. 



누워서 책을 보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휴대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저녁 시간이었다. 아는 형이 밤에 잠깐 커피라도 마시자는 연락을 받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가한 날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점심에 삽겹살 도시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도 배가 불러, 저녁은 거르고 미사를 보러 동네 성당에 갔다. 미사를 보고는 약속 시간까지 기다릴 겸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스타벅스에 가려고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 2군데(2층짜리 / 3층짜리)에 들렀는데 두 곳 모두 이미 만석 + 웨이팅하는 사람까지 가득했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정말 깜짝 놀랐다. 집에 가있을까 하다가 갔다 다시 나오기 귀찮을 것 같아서 근처 이디야에 갔더니 텅텅... 편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아는 형이 도착했다는 연락에 9시쯤 만나서 1~2시간 정도 수다 떨다가, 오랜만에 코인 노래방도 들러서 노래를 좀 하다 집에 왔다.




10.

여자친구를 만나서 자주 가는 중국 음식점에 갔다. 우육면 전문점인데, 우육면은 먹어보지 못한 곳이다. 여기에 오는 이유는 마파두부 때문인데, 이곳의 마파두부는 중국 본토의 맛이 꽤 난다. 그래서 올 때마다 늘 마파두부(+꿔바로우)를 시켜먹는다. 오랜만에 와도 맛은 여전했다.

(보통 중국집에서 먹는 마파두부랑은 전혀 다른 맛이다.)



점심을 먹고는 역시 자주 가는 서촌의 카페에 갔는데, 날씨가 너무도 추웠다. 어제 오늘은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추웠다.(사실 이번 겨울의 '전체적인' 추위는 다른 해만 못한 것 같긴 하지만) 암튼 그렇게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내고는 저녁시간 즈음 집에 왔는데, 추운 날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몸이 무척 노곤했다. 집안일을 좀 하고 손발톱을 깎고는 누워있는데 몸이 늘어진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하는데, 어쩐지 할 게 없음에도 자꾸 이것 저것 어플을 눌러보며 애먼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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