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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Nov 06. 2019

주간 ㄱㄷㅎ 4-2

8.

독립출판물을 두 권이나 어찌저찌 만들어서 내놓긴 했는데, 초반에만 바짝 홍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조차 관심을 잃고 내버려두게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 권의 책 모두 어영부영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또 이런 저런 곳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한 독자(?)분의 도움을 받아 5월 초, 강남의 한 독립서점에서 작은 강연+행사를 진행하자는 요청이 왔다. 돈도 안 되고 사람이 모일지나 모르겠으나 그 요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뜻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책을 내게 되면서, 책을 내지 않았다면 겪을 수 없던 이런 저런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순간과 경험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9.

우리같은 범인들이 현실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일들에 열중' 해야되는 것 같다. '한 가지에 열중하고 빠지는' 사람은 보통 범인이 아닌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이미 푹 빠져 있기 때문에 굳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학창시절 우리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꿈이 명확한 친구' 였을 것이다.



반면 어영부영 살다가 적당히 나이먹고,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닌 일을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하나에만 빠지는 건, 그것에만 몰두하게 되어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회사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면, 회사일이 잘 풀리게 되지 않는 순간부터 불행해진다. 하지만 회사일에 마음을 7쯤, 나머지는 개인적인 취미들에 3쯤 마음을 둔다면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무척 쉬워진다. 어느 한 쪽도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나만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실증이 나기도 쉽다. 취미도 단 하나를 오래 가지긴 어렵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매 끼니 먹으면 지겨운 법이니,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다양한 것을 해보는 것이 좋다.



사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이 직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업무가 바쁘고 많아질 경우 일상에 소홀해지기 쉬우며, 불편한 동료가 생길 때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업무의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우리는 크게 낙담한다.


그럴 때를 대비해 마음의 계란을 다른 바구니에 담아놓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직장 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히 또 열심히 한다고 그 직장을 오래 다니거나, 성과를 잘 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당히 힘을 빼고 있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을 둘 다른 곳들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마음을 두는 곳은 이 블로그다. 그래서 블로그를 엄청 열심히 하고 있음.)




10.

회사일로 또 늦은 시간(밤 12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2시까지 늦은 출근을 하였지만 피로가 쉬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새삼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몸이 전과 같이 않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대비를 해야 한다. 소화 능력이 떨어지게 되니 먹는 것을 줄이고,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대사 능력이 떨어지니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체력이 떨어지니 규칙적인 습관을 가져야 한다, 등등.


대학시절 화장실에 적혀 있던 금언 중 아직도 기억이 나는 어구가 "돈을 잃으면 적게 잃는 것이고, 친구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였는데, 그 말을 요즘 새삼 많이 떠올리곤 한다. 살면서 가장 큰 불행함을 느꼈던 순간 중 하나는 몸이 아팠을 때였다. 사실 아플 때는 육체의 고통 그 자체가 너무 괴로워 불행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새삼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11.

야근 때문에 오후 2시에 출근했다가 6시가 되자마자 빠르게 퇴근을 했다. 친구가 이직을 하는 기념으로 일본 밴드 toe의 공연을 보여준다 했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급히 지하철을 타고 합정에 갔는데도 이미 7시가 넘어 있었다. 공연은 8시에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밥을 먹고 공연장에 갔다.


                             

이 친구와는 사실 toe가 첫 내한을 했을 때 함께 보러갔었다.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아 친구와 얘기 했을 때는 6~7년쯤 되지 않았냐 하고 말았는데,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그때의 사진이 있나 싶어 핸드폰을 뒤져보니 사진 하나가 남아 있었다. 파일 정보를 보니 무려 2010년, 9년 전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로 '아이스크림 폰'으로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렇게까지는 오래 전의 일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이렇게 정확한 파일로 찾아보니 새삼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친구도 그렇게 오래 되었냐며 함께 놀랐다.


사진도 찾아보고, 그때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 저런 기억들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 올라왔다. 그때 갑자기 삭발하고 싶어져서 머리를 빡빡 밀었던 때였는데, 짧은 머리로 공연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공연 스탭이 한 피어싱이 너무 멋져서, 봐두었다가 한두 달쯤 후에 나도 했던 기억 까지도. 집에 오는 길에 10년쯤 후에 또 toe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2.

이번 주는 야근을 하루 하고 그 다음 날에는 공연을 보러 갔다 와서 그런지 금요일에는 몸이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공연을 보며 몸과 머리를 한껏 흔들어 댔더니 목에 근육통이 느껴질 정도로 뻐근했고, 오래 서 있던 무릎은 아직까지 삐걱대는 것 같았다.


업무상 금요일에 일이 많은데 회의까지 해서 밀리는 일을 처리하고 겨우 집에 가는데, 배는 부른데 자꾸 입이 심심했다. 그래서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프링글스 한 통을 사서 집에서 다 까먹었다.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멍하니 꾸역꾸역 먹고 나니 속도 더부룩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새삼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면 일상이 망가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과자를 먹은 것은 과자를 먹고 싶은 욕심보다는 피곤함에 대한 보상 심리인 듯 했다. 한시 쯤 잠이 들었는데, 속이 더부룩해서인지 아침까지 두 번 이나 깼다.



하도 오랜만에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본 것이라 그런지 toe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다 보니 새삼 '취향이란 것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내 취향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음악가 등의 목록을 줄줄 늘어놓는 것을 즐겼다. 그것들이 곧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취미의 고상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toe의 공연을 보고 나왔는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취향이란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브릿팝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브릿팝 밴드들 중 '콜드 플레이'의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몇 번쯤 시도해 봤지만, 그들의 앨범 하나를 통째로 다 듣게 되는 일은 없었다. (좋아하는 싱글 몇 개는 있긴 하지만) 하지만 '콜드 플레이'와 흡사한 음악 스타일을 가진 '트래비스'는 무척 좋아하며, 많이 들었다. 누군가가 보면 별로 다르지 않은 두 밴드에 대한 내 감정이 이토록 다른 것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toe의 음악은 연주 위주의 포스트록이라는 매니악한 장르의 음악로 보편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운이 좋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공연을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이는 내가 가진 취향의 고상함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쩌다보니 toe의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사람'인 뿐이었던 것 같다.


치킨은 좋아하지만 삼계탕은 싫어하는 사람에게 '같은 닭고기다'라고 아무리 설득한들 삼계탕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이랄까.




13.

지난 주말, 서촌을 걷는데 여자친구가 스누피 열쇠고리를 파는 좌판 앞에 멈춰 서서 한참 그것을 살지 말지 고민했었다. 5,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나는 '사도 안 쓸 것 같다'며 여자친구에게 말했고, 결국 구매하지 않고 지나가게 됐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그것을 꼭 갖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토요일인 오늘 여자친구는, '동대문에서 열쇠고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판다'며 동대문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도 동대문 종합시장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정말 별세계였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왔는데, 키링 재료들이 다들 너무 귀엽고 예뻤다. 또한 키링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알고 보니 에어팟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며, 에어팟 케이스에 직접 만든 키링을 다는 것이 유행이 되어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었다. 나는 이런 것이 있는 지도 몰랐는데, 다들 이렇게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말에 동대문까지 와서 재료를 고르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친구는 한참을 한참을 둘러보다 이런 저런 재료를 샀는데, 사고 보니 무려 2만원도 넘었다. (5천원으로 끝났을 수도 있는 것이...)



그리고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함께 키링을 만들었다. (구경부터 만드는 것까지 정말 재미있었다.) 키링을 고르고 만드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인지, 그 과정과 결과물이 무척 값지게 느껴졌다.


완성된 키링을 가방에 달고 집에 오는데, 오는 내내 키링이 가방에 부딪혀 나는 "짤랑 짤랑" 하는 소리에 알 수 없는 자부심마저 느꼈다.



                                      

14.                    

세월호 5주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광화문과 종로, 서촌 일대에서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도 세월호 5주기를 기리는 전시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투덜거리면서도 매주 촛불 집회에 참석한 나의 가장 큰 동인은 오로지 세월호 사고였다. 아직도 나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잘 듣지 못하는데, 집회 당시 유가족들이 그 노래를 부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을 때면 유가족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



광화문과 서촌을 좀 걸으며 세월호 관련 전시를 보았고, 서촌의 카페에 들러 책장에 꽂혀 있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는데 한 챕터를 읽었는데 눈물이 줄줄 나서 그 뒤로는 읽지 못했다. 유가족이 느꼈던 슬픔과 분노가 피부에 닿는 것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슬픔과 분노를 함께 마주해야 할 것이, 남은 사람들의 의무라는 생각을 했다. 조만간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그 뒤로 나온 두 권의 르포책 모두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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