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지름길

일상 속 보물들

by 매일의 기분


군대에 다녀와서 혼자 살게 된 이후로는, 직장때문에, 방 계약기간 때문에, 기타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첫날은 꼭 집 주변을 이리저리 걸어다녀 보곤 했다. 집 근처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골목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대체로 처음에 발견한 곳에 나중까지 계속 가게 됐다.

처음 발견한 편의점에 자주 들러 과자와 음료수를 사고, 처음 가본 미용실에서 매번 머리를 자르고, 처음 가본 길로 출근을 하고, 버스를 타러 다녔다. 그래서 나름대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산책을 꼼꼼히 하려고 했다.

KakaoTalk_20160920_214452691.jpg 인왕산에서 바라본 우리동네


얼마 전 퇴근길에 버스에 내려 집까지 걸어 가는 도중 분명히 내가 어떤 아저씨 한 분을 앞지른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 아저씨가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착각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며칠 뒤, 비슷한 일이 또 생겼다. 내 뒤에 있었던 또 다른 사람이 어느새 내 앞에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지름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이 집에 산지도 9개월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매일같이 가던 길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알고보니 지름길은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곳에 있었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표지에 겁먹고 그쪽으론 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 하나를 통과하면 힘든 오르막을 오르지 않아도 쉽게 버스 정류장에 갈 수 있었다. 여름에 발견했다면 땀을 덜 흘리고 이번 여름을 보냈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아쉽게 놓쳤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니 아쉬움이 생겼다.



방화동에 살 때는 이사가기 직전에 집에 있던 안경집(도보 2분)에서 안경을 새로 했었다. 별 생각없이 했었는데, 아주 싸고 좋은 안경을 맞춰주는 곳이었다. 이사오고 나서 다시 안경을 맞추러 갈까 하다가도 너무 먼 것 같아 가지 않고 있다. 같은 서울인데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오기 전에 몇 개 더 맞출 걸, 후회스럽다. 궁동(대전 유성구)에 살때는 방계약이 끝날때쯤 맛있는 감자튀김집이 생겨서 이사갈 때까지 최대한 많은 감자튀김을 사먹었다.

이런 일상 속 보물들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아쉽다. 하지만 그것이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사갈 때까지 그것들을 몰랐다면 아쉬울 일도 없다. 비록 지난 9개월 동안 더 힘든 길을 통해 출, 퇴근을 반복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편한 지름길로 다닐 수 있으니 좋다.

덕분에 요즘은 버스정류장이 유독 가깝게만 느껴진다.

follow.jpg


:: contact _ napbock@naver.com

:: blog _ blog.naver.com/napbock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