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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Nov 17. 2016

첫 마라톤

군대에서 전역 전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이곳에도 몇 번쯤 쓴 기억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라톤이었다. 군대에서 살을 빼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달리기를 조금 더 진지하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했기 때문에 마라톤에 나가보고 싶기도 했다.  




전역을 하고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겼다. 대전에서 매해 열리는 3대 하천 마라톤 대회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풀코스는 없었고, 10km와 하프 두가지 종목이 있었는데 나는 과감히 하프 코스로 접수를 했다. 그 전까지 하프는 커녕 10km도 뛰어본 적이 없었다. 치기에 불과했다. 매일 하는 운동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훈련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결국은 마라톤 대회 당일날이 되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버스를 타고 마라톤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대전 3대하천 마라톤은 이름 그대로, 대전의 3개의 하천(갑천, 유등천, 대전천)을 낀 하천변을 뛰는 마라톤이었다. 나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안 해서, 평소 신던 런닝화(구매한지 3~4년 된), 평소 입던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주변을 어물쩡댔다. 
  
처음 뛰어 보는 것이라 긴장이 되어, 나름대로 다리와 몸을 충분히 풀고 다리에 파스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댔다. 기록을 재는 칩은 신발의 끈 부분에 이미 끼워 놓은 상태였고, 짐은 대회에서 준비한 보관소에 맡겨두었다.




출발 시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출발선에 섰다. 나는 특별히 베테랑도 아니고, 기록에 큰 욕심도 없었기에 적당히 뒤쪽에 서 있었다. 이윽고 출발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긴 거리를 뛰어 본 게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아니 해본 적이 없으니 할 줄 몰랐다. 그냥 약간의 체력과 여지를 남겨준다는 느낌으로 계속 뛰었다.
     
마라톤 대회에는 페이스 메이커라는 것이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옷이나 풍선같은 것에 시간을 써 놓고 달리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따라가면 그 시간 안에 결승선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예를 들자면 1:50이란 숫자가 씌어진 사람을 따라 뛰다가 결승선에 들어가면 1시간 50분의 기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초보니 2시간 짜리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것에 맞춰 뛰었다. 말이 2시간이지, 2시간 내내 뛴다는 건(당연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본인의 실력보다 높은 기록을 원해서 무리하다 퍼지고 달리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얘길 들었다. 나는 첫 출전이니 우선은 완주만을 목표에 두었다.




하지만 막상 한참 달리고 있으니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았다. 다행히 한 번도 쉬지 않고 1km, 2km를 넘다보니 10km 반환점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력에 여유가 있었다. 2시간의 페이스 메이커를 제치고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넘기 전까지는 나를 제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반환점을 넘고 보니 내가 제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무난하게 1시간 50분의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갈 수 있었다. 결국 다행히도 불안한 순간 없이 나는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도착점에 들어오니 긴장감이 풀려 몸에 피곤이 갑자기 들어닥치는 듯 했다. 주저 앉아 5~10분을 쉬다가 막걸리 한 잔을 얻어먹었다.(이때 먹은 막걸리 한 잔의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완주하고 조금 있으니 문자로 기록이 도착했다. 기록은 1시간 52분 58초였다. 걷지 않고 뛰었고, 무사히 완주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만족했던 경험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긴 거리를 잘 뛰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나는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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