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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튀어나가면

문을 연 사람 잘못입니다.

by 적적 Jan 03. 2025

밤 산책을 다녀옵니다. 요즈음 밖에 나갔다 집으로 들어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모란이 밖으로 튀어 나가 버립니다.

튀어 나간다는 표현이 가장 근접한 표현인 것은 마치 발사대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버튼이 눌러지면 스프링의 탄성에 의해 복도식으로 펼쳐진 다른 집 닫힌 문의 세상으로 나아가 할 일 없이, 목적도 없이 신나게 내달립니다.

다른 집 문 앞의 택배 상자의 냄새를 맡거나 재활용 쓰레기통을 하염없이 바라다봅니다.      


문을 닫지 못하는 사람이 이름을 부릅니다. 이리 와 모란 이리 와를 연거푸 외치다 박모란 오빠 들어간다고 하면 겨우 바짝 들어 올린 꼬리를 하고 세상이 뭐 이래. 하며 또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고 오니 좋구나 하며 들어와 화장실 문턱에 목덜미를 비벼댑니다.     


오늘 아침에도 저녁에도 하루 두 번씩 반복되는 일입니다. 현관문을 반쯤 열어두고 고개를 내밀고 아이를 부르듯이 문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건 오히려 간단했습니다. 문을 열 때 아주 조금 문을 엽니다. 문안 쪽 발사대에 있던 모란과 눈이 마주치고 튀어 나가려던 몸통을 아코디언이 접힌 것처럼 접어 꼬리를 내리고 들어서며 화장실 문에 목덜미를 비벼 댑니다.      


살짝 문을 여는 것이 습관이 되지 못한 것은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아서 소변을 보는 일처럼 어렵습니다.      


아! 어젯밤 산책은 제법 쌀쌀한 바람과 차가워진 기온을 느끼며 느릿느릿 걸었습니다. 문을 열어둔 상가들의 냄새와 새어 나온 불빛과 가로등 불과 가로등 불이 서로를 향해 속삭이며 건네는 떨리는 암호문을 해석하느라 길가에 자주 멈춰 섰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리고 멈춰 선 곳에서 주차 금지 경고판과 견인 지역 표시판 끝에 걸린 작은 별빛이 주차 중이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하늘 한가운데로 견인될 것 같았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모란이 발사됩니다. 모른 척 문을 닫습니다. 모란이 닫힌 문을 바라다봅니다. 이 문이 내가 나온 문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왜 기다려주지 않는지. 문에 귀를 대보자 평소 야옹 거리지 않는 모란이 작은 소리로 야옹 거립니다. 갑자기 아주 크게 웁니다.      


문을 열자 황급히 들어서며 돌아서서도 한참을 야옹과 우웅 에엥 이잉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살랑거리고 꼬리를 한껏 부풀어 세우고 돌아다닙니다.      

감정은 문을 열고 매달려 이름을 부르며 기다려도 기다린다는 걸 알면, 오히려 느긋해지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문을 닫고 감정이 화들짝 놀라 집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할 때까지 잠시 놔두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현관문에 매달려 모란이를 부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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