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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요즘 그렇다고 말해줄래요?

12월 33일인 것 같아요.

by 적적

이불에서 나오는 일은 이불로 들어가는 일과는 사뭇 다릅니다. 침대 위는 집안 공기와는 다르게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덮습니다. 밤의 플랫폼에 서서 막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멀리서 진동이 느껴집니다.

눈이 부신 불빛을 몰고 열차가 들어옵니다. 차가운 바람을 밀어붙입니다. 전기장판의 온기가 도착합니다. 발 디딜 틈 없는 열기 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섭니다. 모란이 잠시 제 주위를 한없이 돌다가 오른쪽 뺨 가로 다가옵니다.

이불을 살짝 들어 올리면 이불속을 들여다보며 안을 살핍니다. 그리고 다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흥미를 잃고 다시 반대편으로 다시 그 반대편으로 그리곤 이불속으로 어깨까지 들이밀면 이불을 덮어버립니다.

이불속에 엎드려있다가 가슴을 타오릅니다. 허리에 제 몸을 널어놓듯이 올라타고 있습니다. 잠시 모란을 위해 정지해 있으면 오늘 잘 곳을 찾은 나그네처럼 양발을 모은 무릎 뒤쪽이나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습니다. 이제 같이 잠을 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야행성 동물인 고양이는 밤에 활동하는 편이라 새벽까지 집안을 돌아다니며 모서리에 놓아둔 물건을 떨어뜨리고 사료를 먹고 모래를 거칠게 파내거나 하며 새벽까지 활동하였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자란 모란은 집사의 습성에 맞춰 제법 같이 자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밤에 자는 시간이 말이죠.


어릴 때 눕히면 눈을 감고 앉히거나 일으켜 세우면 눈을 뜨는 인형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인형은 눈을 뜨거나 감을 때 딸각거리는 소리가 나곤 하였습니다. 잠들기 전, 눈을 감거나 뜨게 할 수 있는 설계도를 상상해 보곤 하였지만, 인형의 머리를 열어볼 생각은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축축한 코를 가져다 대면 일어나는 늙은 남자 인형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런 인형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깨달아버렸습니다.


2025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나이와 달라진 것 없이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연도를 기재하는 공란에 지난해를 쓰는 일이 종종 생길 것입니다. 올해 계획은 아직 미정입니다. 단 한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글쟁이는 글 짓는 일이 복을 짓는 일인 거다. 복 많이 짓자.


봄이 오기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과 하루 몇 페이지의 책장을 넘기며 하루를 보내고 1월을 보낼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며칠 따스했습니다. 다시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손등이 시려오는 아침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모란이 무릎에 올라 자기 발등을 핥습니다.


언젠가 작은어머니께서 밥을 하려고 쌀을 물에 담갔는데 거품이 한없이 일어 깜짝 놀랐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밥솥에 쌀을 담고 세탁기를 돌리려고 하다가 밥솥에 쌀 대신 가루세제를 두 번 담아두었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런 거겠죠.


계획이 할 일을 앞서가서 그런 거겠지.


당신.... 잘 지내고 있나요?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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