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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일상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쓰는 일을 잠시 멈추려는 순간,

by 적적

마지막날입니다. 마지막을 보내는 일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일보다 조금 더 힘겨운일이었습니다. 아마도 2024년은 더욱더 그런 듯합니다.

그가 독감증상으로 무기력해져 있을 즈음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는 또 같은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윌리스 허틀리는 약혼녀 마리아 로빈슨에게 다가가 몇 번이나 망설입니다.

마리아와의 약혼식을 끝내고 허틀리의 난감한 표정이 불안하기만 했죠


허틀리가 탁자에 그녀를 앉히고 나지막이 입을 엽니다. 컵을 집어 들고 물 한 모금으로 입술을 적신 뒤에

악단을 모집했어요. 타이태닉이란 호화 유람선에 올라 일을 하려고 해 급여를 받으면 지금보다 조금 더 큰 집을 임대할 수 있을 거야 힘든 일은 없을 거야 저녁 연회에서 연주하면 되는 일이지


꼭 가야 하는 일인가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밤이면 그들은 대연회장에 모여 술을 마시고 미친 듯이 떠들어 댔다 연주가 끝나면 끊임없이 앙코르를 요구했고 손끝이 떨릴 때까지 연주해야 했죠. 새벽에 방으로 돌아오면 어깨와 다리가 통증으로 저려왔어요 그들은 지치지 않았고 끊임없이 춤을 추었고 지쳐 쓰러지면 다음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일이었고 바이올린의 노예는 아니라고 '우리의 약혼을 기념하며 윌리스에게'라고 쓰인 마리아의 기록이 있는 바이올린 때문기도 했었죠..

주급으로 받은 급여는 마리아에게 송금하였어요 그녀의 전보만이 희망이었고 안식이었죠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혔을 때 수많은 죽음에 관한 자세와 동요하는 승객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밴드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었어요. 연회는 끝났으며 돈을 받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연주했어요.


나는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배가 침몰을 견디지 못했을 때 바이올린 가죽 케이스를 허리에 묶었죠. 배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우리 밴드는 3시간 동안 돌아서는 사람 없이 연주했어요 우리는 우리의 연주가 영광스러웠죠


나는 차가운 물이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마리아가 보고 싶었어요. 마리아에게 미안했죠.


약혼녀 마리아 로빈슨에게 시신과 바이올린이 전달되었죠.

그녀는 독신으로 살다가 그녀가 죽은 뒤 바이올린은 자선 단체를 거쳐 경매장에 나오게 되고 실제 15억에 낙찰되었어요.


침몰하는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조심히 불..러..봅..니…. 다.


함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r9JHXirUBs

*제임스 캐머런이 영화를 만들 당시 자문을 맡았던 폴 루덴 브라운은 “캐머런은 1958년 영화 <기억에 남을 밤>(A Night To Remember)에서 밴드의 연주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신의 영화에 가져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카메룬이 “‘그 이야기에서 가장 강력한 부분이고 그 장면을 사랑한다. 그것을 전부 훔칠 거고, 내 영화에 담을 거다’ 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타이타닉의 바이올린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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