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로 젖었다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목덜미가 젖어 있었다.
물이 흐른 자리에 작은 떨림이 머물렀다.
손은 천천히 정수리를 따라 내려왔다.
뇌를 스치는 듯한 감각,
머리칼 아래로 퍼지는 미지근한 기류.



방 안엔 말이 없었다.

귀를 막고 있는 건 손이었다.
그 사이로는 어떤 소리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귀를 감싸며
들리지 않는 말들이 통과해 갔다.



샴푸의 냄새가 맴돌았다.
거품은 짧게 부풀었다가 곧 꺼졌다.
손등에 남은 미세한 흔들림,
조심스레 움직이는 손끝,
빗질과는 닮지 않은 정돈.

물을 끼얹는 손이 느리게 기울어졌다.


방바닥에는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물은 피부를 따라 흘렀고
등줄기 아래로 사라졌다.

젖은 머리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도
무릎이나 손끝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지한 장면 속에서
오직 손만이 살아 있었다.

어딘가 아프다는 말을 삼킨 시간,
조용히 식어가는 두피의 체온,
손이 떠난 자리에 남은 열,
말보다 오래 남는 감각.

젖은 머리는
마르지 않는 고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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