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이 아닌 진동으로 남는.
물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손끝이 투명한 표면을 가볍게 훑을 때, 공기가 뒤틀리고, 떨림이 생기고, 그 떨림은 곧 울림이 된다. 유리 하모니카. 누구도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소리를 내는 악기일 거라고는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꿈의 이름 같고, 과거 어딘가에서 건져 올린 기억의 입자 같다.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이 고안한 악기.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구조물이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물기 어린 손끝에서만 반응하는 감정의 수신기이며, 맑고 날카롭고 그러나 무심한 그 음색은 인간의 말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어떤 진동의 언어다.
유리 하모니카는 건반도 활도 현도 없다. 다만, 손가락과 물, 그리고 고요. 페달을 밟으면 중심축이 천천히 회전하고, 크기와 두께가 제각기 다른 유리 주발들이 돌아간다. 젖은 손끝이 그것들을 스치면 소리가 난다. 와인잔의 가장자리를 문질러 소리를 내보았던 적이 있다면, 그 감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흉내일 뿐이다. 유리 하모니카는 훨씬 더 정밀하고, 훨씬 더 잔인하다.
베토벤이 이 악기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었다고. 더는 말을 걸 수 없는 세상과의 마지막 교신을 그는 그 투명한 음에서 찾으려 했다고. 그러나 그 음은 연주자들을 서서히 망가뜨렸다. 기억이 사라지고, 감각이 마비되며, 때로는 광기에 휩싸였다.
유리의 재질, 납크리스탈. 물을 묻힌 손끝으로 문지를 때, 납이 체내로 흡수되기 쉽다는 가설이 떠돌았다. 결국 유리 하모니카는 연주하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악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울림이었다고.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기 중의 떨림이었다고. 그러니 그 울림은 진짜 소리라기보다는, 잊혀진 감각에 대한 어떤 암호, 고요 속의 고백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kTUL7DjTow
유리 하모니카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종종 고개를 돌린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다. 너무 가늘고 투명해서 공기 자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 존재한다. 어떤 파동은 눈에 띄지 않지만, 몸 전체로 느껴진다. 마치 방 안의 공기 밀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 닿지 못하는 순간, 감각은 울림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손끝에서만 반응하는 소리. 그것은 침묵과 침묵 사이의 얇은 막, 혹은 무언의 시간 위를 걷는 감정이다. 말할 수 없어졌을 때, 우리는 그저 소리를 울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말보다 정직하고, 말보다 멀리 닿는다. 말이란 늘 언어 바깥의 세계를 포착하는 데 실패하지만, 소리는 그 실패의 가장 가까운 형태다.
어떤 날은 그 음이 눈물처럼 맺히고, 어떤 날은 얼음처럼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물이다. 유리 하모니카의 음색처럼, 삶의 감정도 어느 순간엔 투명하고 맑지만, 동시에 너무나 쉽게 깨진다. 우리는 파편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파동을 기억한다. 어떤 경험은 잊히지만, 그 떨림은 남는다. 마치 고주파처럼. 잡히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감정의 진동.
사람들은 오래된 유리잔을 모은다. 균일하지 않은 곡선, 금이 간 표면, 미세한 기포와 굴곡. 그것은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 살아온 시간이 새긴 주름 같은 것. 유리 하모니카는 그런 잔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크기, 두께, 공명 주파수가 다르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기억이다.
우리는 종종 이해하려 하지 않고 듣는다. 혹은 듣지 않은 채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소리는, 어떤 감정은,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결코 들리지 않는다. 삶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간다. 들리지 않은 채, 그러나 분명히 울리며. 우리가 놓친 수많은 감정이 사실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는다.
유리 하모니카는 그런 진동을 모아 연주한다. 말해지지 못한 마음, 외면한 감정, 지나쳐 버린 시간의 잔향. 그것들을 다시 불러온다. 그 울림은 말이 없지만, 말보다 깊다. 손끝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걸 말한다.
이성은 건조하다. 감정은 습기를 머금는다. 유리는 차갑고, 물은 따뜻하다. 유리 하모니카는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이다. 감정이 이성을 두드리고, 이성이 감정을 수용하는 순간. 소리는 거기서 시작된다. 건조한 손끝으로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 습기가 있어야만 비로소 울 수 있다.
우리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말 대신 울리는 소리를 찾았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 닿지 않는 거리, 풀리지 않는 오해. 그것들은 말을 거부하지만, 소리는 받아들인다. 손끝이 닿는 그 순간, 무언가가 천천히 열리고, 서서히 울린다. 어떤 소리는 침묵 안에서만 들린다. 너무 작아서, 너무 섬세해서, 말이라는 거친 도구로는 결코 옮겨낼 수 없는 것들.
우리는 유리 하모니카를 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진동을 믿으며. 그 위에 손끝을 올린다. 조심스럽게, 물기 어린 채. 우리 안의 고요와 타인의 침묵 사이에서, 그 경계 위를 맨손으로 쓸듯이 지나간다.
소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혼자의 울림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침묵이, 한순간의 떨림으로 변해 서로를 건드릴 때, 그것이 곧 음악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음악이라 하고, 어떤 이는 소음이라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미세한 진동을 듣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음을 울린다.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소리인 듯. 마치 누구도 그것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인 듯.
삶은 어쩌면, 거대한 유리 하모니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를 건너는 손가락이다. 떨림을 남기며, 침묵을 울리며, 투명한 진동을 따라 살아가는 감정의 주파수. 그 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물에 젖은 손끝을 천천히 유리의 표면 위에 가져간다. 거기에는 어떤 확신도 없고, 오직 조심스러운 떨림만이 있다. 그 손끝은 이미 수없이 깨진 적 있는 마음처럼, 파편을 기억하고 있고, 또다시 닿는다. 맨살로 고요를 건드리는 일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너무 세게 문지르면 깨질 것이고, 너무 약하게 스치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중간 어딘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좁은 경계에 자신을 세운다. 그곳은 균형이 아니라 긴장이다.
소리는 힘이 아니라 집중으로부터 비롯된다. 물은 흘러내리고, 손끝은 흠뻑 젖으며, 차가운 유리의 윤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손을 타고 스민다. 손목에는 땀이 맺히고, 심장은 느리게, 그러나 뚜렷하게 박동 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하나의 진동으로 수렴시킨다. 말할 수 없는 마음, 말하지 못한 시간, 전해지지 않은 감정들이 그 얇고 투명한 주발 위에서 진동하며, 미세한 음을 뱉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직 자기 자신만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듣고 있다. 아직 울리지 않은 침묵의 가능성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손끝에서 막 태어나는 떨림의 기척을. 언어보다 오래된 언어, 기억보다 더 먼 기억의 감촉을. 그 음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다시 손을 뻗는다. 마치 그 소리를 끝내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혹은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그는 분명히 존재한다.
위로.
자기 안의 침묵을 위험하게 흔들며, 투명한 소리의 그림자를 불러내는 자.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