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1화

중력청의 성실한 납세자들

중력세를 지불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은밀한 품위

by 적적

침대는, 일인용 욕조는 구덩이다. 몸은 매일 그 안으로 떨어진다. 누울 때마다 무언가에게 끌려간다는 감각이 생긴다. 처음엔 피로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 더 오래되고 본질적인 힘이다. 중력. 태어나서 처음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 중력은 뺨을 당기고, 심장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모든 비밀은 발밑으로 스며들었다. 그 힘은 세금처럼 빠져나가고, 아무도 그것을 환불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단 한 명도.



계단을 오르다 말고 멈춘 사람들은 대부분, 숨보다 먼저 떨어지는 마음 때문이다. 발이 아니라 생각이 무겁다.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중력은 땅만 끌어당기는 게 아니다. 기억도, 후회도, 사랑도, 모두 아래로 쏠린다. 가슴을 찌르는 감정은 사실, 가슴을 통과해 배꼽 아래 어딘가에 고이는 액체일지도 모른다. 증발하지 않는 감정, 그것이 중력의 납부고지서다. 매일의 몫이 정해져 있고, 늦게 내면 이자는 뼈에 붙는다.



물건은 땅에 떨어지지만, 사람은 관계로 떨어진다. 관계는 곧 중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달처럼 붙어 돈다. 거리를 두면 끌리고, 다가서면 밀려난다. 그 모든 역학 속에 이름 없는 세금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보처럼 웃는 것도,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것도, 지불 행위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간마다 뇌의 한 조각이 눅눅해지고,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폐 안에서 발효된다. 언젠가 말하려던 것들, 다 진동을 머금은 채 무게를 가진다.



단단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낸다. 꿋꿋해 보이는 이들의 어깨엔 보이지 않는 추의 자국이 있다. 지탱하는 척하면서 무너지는 사람들, 무너지면서도 지탱해야 하는 순간들. 그것이 어른의 얼굴을 만든다.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무게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등뼈는 굽고, 표정은 굳는다. 표정이 굳는 건 어떤 감정이 아니라, 세금을 너무 많이 낸 얼굴이다. 견디는 얼굴들엔 대개 고지서가 붙어 있다. 눈빛은 납부확인서 같은 것이다.



공중에 오래 머무는 것은 신기루다. 웃음, 유행, 축하, 박수, 스포트라이트. 모두 잠시다. 결국엔 아래로 떨어진다. 박수는 멈추고, 꽃은 시들며, 사진은 앨범 속으로 밀려난다.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상승은 착륙을 향한 준비라고. 성공도 실은 추락의 정중한 서막이다. 위로 솟구치는 감정에도 납세의 의무는 있다. 좋아하는 만큼 아파야 하고, 얻은 만큼 잃어야 한다. 얻었을 땐 들뜨지만, 지불은 언제나 고요하게 찾아온다. 웃고 있을 때 이미, 그림자는 준비된다.



중력이 없었다면, 눈물은 떠다녔을 것이다. 그랬다면 울음은 지금처럼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 비로소 감정은 모양을 가진다. 그 모양이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지형도를 만든다. 중력은 감정을 아래로 데려가고, 아래는 언제나 진실을 품는다. 웃음은 가볍지만, 울음은 무겁다. 웃음은 떠오르고, 울음은 가라앉는다. 삶이 고요해질수록 그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아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중력을 처음 마주한 존재의 당연한 반응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넘어질 때, 처음으로 무언가를 놓치고 떨어질 때, 뇌는 그 아픔을 두려움과 연결시킨다. 어른들은 더 이상 자주 넘어지지 않는다. 대신 멈춘다. 우뚝 서서 멈춘 채로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멈춤에도 세금은 부과된다. 멈추는 사람의 발목에는 삶의 체납 고지가 차곡차곡 엉킨다.



중력은 고요한 폭력이다. 날마다 몸을 끌어당기고, 마음을 짓누르고, 문장을 침묵으로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버리고 싶어 한다. 가벼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리 버려도 무게는 남는다. 기억은 물질이다. 감정도 물질이다. 떠오르는 생각조차 일정한 질량을 갖는다. 과학은 그렇게 말한다. 세상에 무게 없는 것은 없다고. 그래서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세금을 내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잠든 사람의 몸은 가장 정직하다. 누운 몸은 묵직하고, 그 안에서 돌지 않는 피는 검은 수면처럼 고요하다. 잠은 또 하나의 세금이자 일시적 면제다. 무의식은 일종의 유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으로 과세된 뇌가 하루만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든 얼굴은 무표정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납세자의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체념과 인내를 통과한 뒤에만 얻을 수 있는 평면.



아무도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는 달에 발을 디뎠고, 화성을 탐사했지만, 결국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무게다. 사랑은 변할 수 있지만, 무게는 바뀌지 않는다. 고향은 무거운 장소고, 기억은 무거운 이미지다. 어느 날 무심코 꺼내 본 옛 사진 한 장에도 감정의 질량이 있다. 숨겨놓았던 감정들이 다시 무게를 갖고 돌아온다. 이자까지 포함해서.



결국 삶은 내리막이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만, 몸은 아래로 향한다. 무릎은 닳고, 심장은 천천히 지구 중심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 끝이 반드시 추락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다만, 도달한다는 뜻이다. 진실은 늘 아래에 있다. 겸손도, 침묵도, 사랑도. 소리 지르는 것은 가볍고,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겁다. 감정을 오래 지닌 사람일수록, 말이 적다. 가벼운 말은 위로 떠오르지만, 진짜 문장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어떤 문장들은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것은 납부 절차와 닮아 있다. 문장을 쓰는 행위는, 무게를 세는 일이다. 언어로 남기는 감정은 이미 납세된 감정이다. 세금은 고통이 아니라 증거다. 살아 있었고, 사랑했고, 기억하고 있다는 흔적. 우린 모두 중력세를 내고 있다. 조금씩, 매일, 말없이.


언젠가 그 총액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삶이라고.


이제는 가끔 중력세를 고지서가 아닌 고백서처럼 받아들인다. "당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티셨군요"라며, 은근한 위로의 말풍선을 달아주는 고지서. 너무 오래 참은 사람들, 툭하면 부스럭거리는 무릎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눈빛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들 제 몫의 세금을 조용히 잘 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는 실연으로, 누구는 알람 소리로, 누구는 교통체증으로 중력세를 납부한다. 장바구니 들고 계단 오르는 노모는 매일 현금으로 낸다. 하룻밤 사이 늘어난 흰머리는 이자가 붙은 감정의 수치일지도.



웃기는 건 그 모든 납부 행위가 아무리 절실하고 고통스러워도, 세무서도 없고, 환급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중력은 주소 변경이 안 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두가 보이지 않는 중력청의 충실한 납세자다. 어쩌면 그래서 삶은 우아하다. 끌려가면서도 제 발로 걷는 척하고, 무너지면서도 인사처럼 고개를 숙이고, 매번 바닥에 닿으면서도 체면을 차린다. 매일을 똑바로 서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기우는 기술로 살아간다. 중력에 납부하는 그 순간들이 쌓여, 나중엔 유머가 되고, 한숨이 되고, 가끔은 시가 된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납부 완료된 마음 하나.



고요히 떠오른다. 그건 다 쓴 영수증처럼, 찢을 수 없는 문장이 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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