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겨누지 않았던 슬픔에 대하여
실탄은 종종 생각보다 더 무성의하게 발사된다. 조준하지 않은 채 당겨진 방아쇠는 방향도, 의도도 불분명한 탄도를 그리며 허공을 가른다. 그것은 언제나 조용히 출발한다. 총성은 늦게 도착한다. 뺨을 때리는 듯한 공기의 울림이 퍼지기 전, 이미 탄환은 무언가를 관통했을 것이다. 피탄지에서 출혈이 시작될 즈음, 손가락은 이미 무감각해졌고, 눈앞의 표적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일은 종종 조준 없이 쏘아 올린 탄환에 가깝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말이 누군가의 흉부를 관통하고, 계획되지 않은 선택이 삶을 비껴 날아가며 끝내 무엇 하나를 파열시킨다. 그리고 그 파편은 문득 어떤 이의 발밑에서 반짝인다. 누구의 것인지조차 모른 채, 남겨진 채, 그러나 분명히 흘러나온 흔적처럼.
어떤 밤은 비닐을 찢는 소리로 시작된다. 플라스틱 봉투 안에 갇혀 있던 냉기가 깨지면서 방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구겨진 시간과 접힌 마음의 조각들이 함께 쏟아져 나온다. 그 조각들에는 자주 과거의 얼굴이 찍혀 있다. 의도치 않게 놓친 말, 어설픈 사과, 끝내하지 못한 포옹. 그것들은 모두 조준하지 않은 탄환들이다. 맞히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가락에 닿는 어떤 충동만으로 당겨진 방아쇠였다. 그러나 이미 총은 발사되었고,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한다. “미안, 그날은 좀 힘들었어.” 아무 말도 덧붙여지지 않은 문장. 발신된 시점은 자정을 넘긴 새벽. 흰 배경 위에 검은 글자가 떠다닌다. 그것은 탄환이 아니라, 탄환의 그림자였다. 타깃을 비껴간 감정, 어디에도 닿지 못한 사과. 총구가 닫힌 후에야 고백되는 늦은 후회. 총알은 이미 날아갔고, 마음은 그 궤적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조준을 믿는다. 충분히 고민하고, 조율하고, 계산하면 삶은 온전해질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미세하게 흔들린다. 손의 미묘한 떨림, 숨의 길이, 예기치 못한 바람 한 줄기. 그리고 결국은 발사.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예측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비껴 나간 감정이,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비극을 낳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실수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총성은 잊힌다. 그러나 탄환은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각인되고, 상처의 형태로 남는다. 가끔은 흉터가 되고, 더러는 이야기의 뼈대가 된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무성하게 자라나는 이야기들, 그것들은 모두 조준 없는 발사 이후에야 만들어진다. 오해, 단절, 침묵,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말들. 그것이 잔해처럼 삶을 구성한다.
어떤 이는 총을 내려놓고 침묵한다. 또 어떤 이는 더 많은 총을 들고, 더 많은 방아쇠를 당긴다. 조준하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무언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비워내기 위해. 말이 말을 낳고, 말이 칼이 되며, 결국 그 날카로움이 스스로를 해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감정은 방치된 탄약고처럼 쌓여가고, 한순간의 충동은 폭발처럼 퍼져나간다.
조준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은, 실은 가장 무책임한 행위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압박과 공포, 침묵 속에서 밀려오는 무명(無名)의 감정들. 그것이 한 사람을 방아쇠 쪽으로 밀어붙인다. 당기지 않으면 부서질 것 같아서, 날리지 않으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그 순간, 총은 한낱 확성기에 불과하다. 외침 없는 말, 다다르지 못한 신호.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 조준하지 않고, 당기고, 후회하고, 다시 방아쇠를 쥔다. 그것은 어떤 강박이거나, 습관이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남은 본능일 수 있다. 문득 스치는 눈빛에 마음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에 오래된 상처가 다시 욱신거린다. 그렇게 마음은 늘 조준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향한다. 어쩌면 누군가를 겨눈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타인이라는 이름의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어긋남을 쏘아버리는 것. 맞히지 못해도 괜찮다고, 어차피 조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어떤 기억은 늘 갑작스럽다. 문득 떠오른 낡은 사진 속, 아직 어렸던 얼굴. 부끄러움도 모른 채 웃고 있던 표정. 그 얼굴을 향해 누가 어떤 말을 던졌는지, 어떤 시선이 지나갔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표정은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총알이 지나간 자리, 어렴풋이 찢긴 듯한 자국. 그로부터 나이만큼 멀어졌지만, 표정의 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오발과의 타협이다. 명중을 꿈꾸며 겨누지만, 대부분은 벗어나고, 미끄러지고, 부서진다. 그리고 그 틈에서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이해하고, 껴안는다. 누군가의 탄환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방패가 되기도 하며. 그사이에 피어나는 감정은 더 이상 총성과 닮지 않았다. 그것은 비명보다 조용하고, 상처보다 따뜻했다.
조준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은, 사실은 삶에 대해 여전히 미련이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 무언가에게 도달하길 원한다는 것. 명중하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그 감각의 연속선 위에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 그 부정확함 속에서만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날. 그동안 쏘아 올린 수많은 탄환들이 별처럼 떠다니는 밤하늘 아래에서, 누군가 조용히 고백한다.
그때의 나는, 조준하는 법을 몰랐어.
그 고백 하나가, 모든 오발을 덮는다. 그리고 삶은 조용히, 총구를 내린다.
총구를 내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다. 무기보다 오래 남는 것은, 그 총성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난 무음이다. 그것은 발화되지 못한 말들의 무덤이자,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의 공동묘지였다. 말하자면,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무언가를 오발한 자들이다.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분노를, 혹은 그사이 어딘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누구도 완벽하게 조준한 적은 없었다. 누구의 탄환도, 누구의 외침도 정직하게 목표에 닿은 적은 없다. 사람들은 종국에 이르러 손을 떨며 고백한다. ‘맞히려 한 게 아니었어.’ 이 말에는 용서가 담겨 있고,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기색이 있다. 삶은 언제나 조준보다 선의에 가까웠다.
조준 없이 방아쇠를 당긴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흉터를 어루만진 채 성장했다. 그렇게 서로의 표적이 되었다가, 끝내 서로의 생존 증거가 되었다. 조준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아직 사랑하고 있었고, 아직 물러서지 않았다는 징표. 삶은, 어쩌면 조준 없이 쏘아 올린 감정들로만 겨우 빛나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고 부정확하며 때로는 서툴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향해 있었던’ 마음의 궤적. 그것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여운이, 오래도록 귀에 맴돈다.
총성보다 더 깊고, 침묵보다 더 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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