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3화

혀끝으로 기다리는 법에 대하여

깨물지 않고도 삶에 도달하는 방식

by 적적

모든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모함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대출금 만기를 모른 척하고, 어떤 이는 이별의 징조를 외면하며, 또 어떤 이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생크림 케이크를 반값에 샀다가 냉장고 앞에서 눈물짓는다. 그러나 정작 진짜 무모한 사람은

사탕을 아무 망설임 없이 깨물어 먹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그들은 맨주먹으로 벽을 치는 자와 다르지 않다. 어금니가 저릴 걸 뻔히 알면서, 혀의 여린 살이 조각난 사탕에 베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 일을 감행한다. 이쯤 되면 호러다. 단것이 주는 안락 속에 숨은 파열의 본능.


누군가는 사탕을 깨무는 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세상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생의 무게를 감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도 그런 사람이었다. 예컨대 어린 시절에는 사탕을 깨물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TV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조심스럽게 사탕을 혀끝에 얹는 장면을 보며 ‘단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암묵적 계율을 체득했을 것이다. 사탕은 혀 위에서 서서히 녹아야만 했다. 깨물어버리면, 사탕이 사탕이기를 포기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사탕은 빨간색 포장지에 싸인 계피 맛 구슬사탕이었다. 할머니가 교회 헌금 봉투에 슬쩍 넣어 주었던 그 사탕은, 예배 시간 내내 그녀의 손 안에서 녹고 있었다. 너무 일찍 입에 넣으면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질 것 같아서, 한 시간 동안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반들반들한 표면이 땀에 젖어 눅눅해졌고, 포장지는 손끝에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끝내 그것은 깨물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혀끝에서 목덜미로 단내가 퍼질 때까지, 그 단맛을 인내했다. 단맛은 대가 없는 것이 아니었고, 그 대가는 인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사탕을 깨무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언니였고,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였다. 일찍이 인생의 신맛을 본 사람들이었다. 계단에서 미끄러진 후 피멍 든 무릎을 자랑처럼 보이며 사탕을 으스러뜨리던 그들은 이미 ‘단것은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을 체득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사탕 씹는 소리는 어떤 선언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기다리지 않겠다’는, 혹은 ‘깨뜨려서라도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 사탕은 단단했고, 그들은 더 단단했다.



그 선언을 그녀는 한 번도 흉내 낸 적이 없었다. 기회는 많았다. 편의점의 파란색 사탕, 담임선생의 서랍 속에서 무심히 꺼내 주던 레몬 사탕, 차장님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숭늉 맛 구슬까지. 그러나 그녀의 혀는 늘 사탕 위에서 느릿하게 헤엄쳤고, 이빨은 끝내 닿지 않았다. 어금니가 한번 딱 소리를 낸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맛은 그 순간 멈추고, 그 뒤로는 기계적인 씹힘만 남는다. 단 것의 생은 부서지는 순간 종말을 맞는다. 단맛의 종말은 어금니의 맹목이다.



사탕을 깨물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연애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너를 깨물지 않겠다’는 의지, ‘네가 네 맛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불편한 인내.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집요한. 관계가 혀끝에서 천천히 녹기를 바라는 사람은 대개 뭔가 늦는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고백을 받는 것도, 이별을 실감하는 것도. 사탕이 혀 위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침묵하는 자는,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견디는 쪽이다. 깨물면 더 빠를 것을, 그들은 끝까지 침묵한다.



사탕을 깨물어 본 적 없는 그녀의 세계는 조용했다. 부스럭거리는 포장지 소리가 전부였다.

그 세계에서는 어떤 감정도 급하게 터뜨려서는 안 된다. 사탕은 속을 감추고 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그 속이 다 드러난다. 푸른 사탕의 중심에 감춰진 초콜릿, 외피 속에 갇힌 새콤한 젤리. 기다림은 항상 보상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다림. 그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도전하고 싶어진다. 정말 깨물어버리고 싶어진다. 일 때문에 버스를 놓치고,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 채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혹은 진심을 다해 쓴 문장이 누구의 피드에도 닿지 않을 때. 그럴 때 입 안에서 무언가를 깨뜨려버리고 싶어진다. 사탕이라도 좋으니, 조용히 한 번 박살 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그녀는 깨물지 않는다. 잠시 이를 다물고, 천천히 입 안을 굴린다. 혀는 여전히 단맛을 골라낸다. 그것은 복수도, 승리도 아니었다. 그냥 습관이었다.


인생은 결국 사탕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라고. 누군가는 깨물고, 누군가는 녹이고, 또 누군가는 애초에 입에도 넣지 않는다. 그 속에서 철학이 생기고, 태도가 드러난다. 살아 있는 방식은 사탕 하나에 이미 고스란히 들어 있다. 누군가 사탕을 단숨에 깨물며 말한다. "이게 더 맛있어." 어떤 이는 고개를 젓는다. "아냐, 기다리는 맛이 더 깊어."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사탕을 다르게 먹는 중이고,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맛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끝내 어떤 사탕도 깨물지 않았던 그녀는, 어쩌면 사탕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끝까지 단맛을 간직할 거라고, 안을 열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맛이 있을 거라고. 그 믿음이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이다. 언젠가 그 혀가 말한다. 이제는 깨물어도 돼. 그러나 그때는 사탕이 없다. 녹아버렸다. 다만 혀끝에 남은 것은 미세한 단맛의 잔상.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다루는 방식의 메타포였는지도 모른다.



사탕 하나를 끝까지 깨물지 않고 녹이는 사람은, 본능을 잠시 유예하고 직감을 미루며 세계를 관찰하는 태도를 선택한 사람이다. 세상을 혀끝으로 받아들이는 일. 조급하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 감각의 리듬. 그것은 어떤 종류의 용기였다. 세상은 빠르게 깨물라고 말한다. 기회를 깨물고, 감정을 깨물고, 사탕도 깨물라고. 기다리는 자는 뒤처지고, 인내하는 자는 손해를 본다. 그러나 혀끝을 맴도는 단맛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자는 알고 있다. 모든 것에는 자연스러운 속도가 있으며, 그 속도를 거슬러 맛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순간, 그 대상은 더 이상 본래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탕을 깨문다는 것은 예측을 단축하는 행위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얼마나 더 단단한지, 혹은 텅 비어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 그러나 그 충동을 억누르고 끝까지 감각을 열어둔 채 기다리는 사람은, 세계와의 대화에서 대답보다는 침묵에 귀 기울이는 쪽이다. 흔히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고 바로 해답을 원한다.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깨물어 그 알맹이를 확인하려고 한다.



끝까지 깨물지 않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알맹이를 추정하고, 흐름을 따라가며, 감각의 파편들을 모아 의미의 궤를 그려 나간다. 그들이 얻는 것은 더뎌도, 어떤 잃음 없이 도달한 충만이다. 사탕이 녹는 동안 생긴 침묵의 여백, 그 안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이해. 그것이 어쩌면 단맛보다 깊은 무언가일 수도 있다.

끝내 한 번도 사탕을 깨물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하나의 서사다. 그것은 조심스럽고 섬세한 방식으로 세상을 믿어온 이력이며, 언제나 파열보다는 지속을 선택해 온 태도의 고백이다. 한입에 깨물어 삼키는 욕망을 수없이 지나치고도, 단맛이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입 안을 굴리며 견뎌온 인생. 그 부드럽고 천천한 저항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사탕을 통해 자신을 맛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안다. 단맛은 결코 입 안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며, 종종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의 여운으로 더 깊이 기억된다는 것을. 혀끝에 남은 그 희미한 단맛,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세계관이자, 그녀가 사탕을 깨물지 않고 살아온 이유다.



결국 사탕이 사라진 후에도 그녀의 사탕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입 안의 감각이 아니라, 기억 속에 고이는 투명한 결정이다. 단맛의 기억은 부서지는 소리보다 길고, 깨지지 않은 삶의 조용한 방식은 의외로 단단하다. 그런 사람은 사탕이 사라진 후에도 그것을 오래도록 떠올린다. 입 안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천천히 다시 녹이듯이. 사탕은 끝내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끝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살아 있는 동안 사탕을 깨물어 먹어 본 적이 없을 것 같아. 그녀는.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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