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15화

살아있음의 극점에서.

가슴이 설레는 순간 떠오르는 미묘한 것들

by 적적

가슴이 설렌다는 말은 단순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단순히 혈류의 가속이 아니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세계가 갑작스레 깨어나는 소리다. 어떤 이는 그것을 첫사랑에 빗대고, 또 다른 이는 모험 앞의 긴장이라 말한다. 그러나 설레는 순간마다 깨어나는 감각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 설렘은 물결처럼 밀려왔다가 잔잔히 흩어지고, 때로는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파편처럼 흩뿌려진다.



가슴이 설레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늘 예상 밖의 장면들이다. 오래된 책장 속에 끼워 두었던 쪽지, 이미 색이 바랜 영화 티켓,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풍기는 빵 냄새 같은 것들. 그것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쑥 나타나 일상의 균형을 흔든다. 그 순간 가슴은 심장이 아니라 하나의 스크린이 된다.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그 안에 흐릿하게 비친 장면들을 환영처럼 재생한다. 설렘이란 사실 기억과 욕망의 교차점에서 피어오르는 일시적인 불꽃에 가깝다.



설렘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사랑을 향한 감정일 수도 있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는 갈망과 동시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겹쳐질 때, 가슴은 미묘한 떨림을 드러낸다. 그 떨림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언제나 뚜렷하지 않다. 차라리 안갯속에서 빛을 찾는 행위와도 같다.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것.



설렘이 일으키는 파문은 단지 개인적인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문학, 영화, 음악은 언제나 그 감정을 재현하고 포착하는 데 몰두해 왔다. 문학 속 첫사랑의 서술은 언제나 과장되거나 미화되어 있지만, 그것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누구나 그 과장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에 비친 인물들이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객석의 심장이 동반해 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인의 서사 속에서 불현듯 자기 삶의 파편이 비치고, 그 순간 관객은 스스로의 설렘을 떠올린다. 설렘은 결코 고유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공유되는 방식으로 진동한다.



또한 설렘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시에 찾아온다. 십 대의 고백 앞에서처럼, 중년의 재회 앞에서도 동일하게 심장은 두근거린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옛 연인의 얼굴, 혹은 새 직장에서 처음 마주한 동료의 미묘한 웃음. 그것들은 모두 시간의 경계를 허물며, 설렘이 결코 특정한 나이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생애를 통틀어 설렘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반복이야말로 삶의 질감을 결정한다. 설렘 없는 삶은 색이 바랜 풍경과 같다.


심리학은 설렘을 일종의 ‘도파민 분비의 급상승’이라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언제나 건조하다. 생리적 설명이 놓치는 것은 설렘의 상징성이다. 설렘은 단순히 호르몬 반응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맺는 방식 그 자체다. 예기치 못한 만남 앞에서 설레는 이유는 타인이라는 세계의 미지성 때문이다. 반대로, 익숙한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마저도 여전히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설렘은 실패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고백이 거절될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으면서도 희열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설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붙는다. 실패할 가능성까지 포함해 흔들리는 그 찰나가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오히려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장된 순간에는 설렘이 사라진다. 완벽하게 계획된 데이트보다도, 비 오는 날 갑작스러운 우산의 공유 속에서 더 깊은 떨림이 발생하는 이유다. 설렘은 불안과 위험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할 때 더 빛난다.



예술가들이 평생 동안 추구하는 것도 결국 이 감정의 잔여물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의 숨소리를 느끼는 배우, 빈 캔버스 앞에서 첫 붓질을 하는 화가, 미완성 원고의 첫 문장을 적는 작가. 그들 모두는 설렘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것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전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설렘은 전달 가능한 감정이다. 한 사람의 가슴에서 시작된 떨림이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옮겨가는 순간, 세계는 비밀스러운 연결망으로 묶인다.



설렘이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것들은 단순한 개인적 체험의 조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능성, 예측 불가능한 우연, 실패를 품은 기대. 그것들이 모여 삶의 가장 생생한 순간을 구성한다. 설렘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덧없지만, 그 덧없음이야말로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비밀스러운 동력이다.



설렘은 대개 예측 불가능하다. 계획된 만남 속에서보다는 우연한 스침 속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버스 창가에 앉아 멀리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마주치는 시선, 혹은 서점의 한 구석에서 손에 잡힌 낯선 제목의 책.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설렘은 언제나 작은 충격과 함께 기억된다. 그 충격이 순간의 시간을 늘린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오래 남는다.



가슴이 설레는 순간에는 시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똑같은 시곗바늘이 움직여도, 그 안에서 흘러가는 체감은 훨씬 길다. 그것은 기다림의 시간과도 닮았다. 설렘은 도착하기 전의 역에서 가장 선명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아직 건너지 않은 다리. 그 직전의 순간에 가슴은 가장 빠르게 고동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설렘은 도착과 충족이 아니라 도착 직전의 공백에서 가장 크게 빛난다.



설렘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종종 불완전하다. 이름조차 불분명한 그림자, 오래전 꿈에서 본 듯한 인물,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장면들. 그것들은 현실의 사건과 무관하게 떠오르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을 규정한다. 예컨대 누군가의 손끝을 스치며 느낀 떨림은, 단지 살결의 온도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가 동시에 겹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렘은 언제나 현재를 넘어선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한순간에 압축하는 감정이다.



설렘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이 지나가면 남는 것은 허무에 가깝다. 마치 거품이 터지듯, 설렘의 중심은 비어 있다. 많은 이들이 설렘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공허 때문이다. 가슴이 두근거릴수록, 그 끝에는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공백이 남는다. 하지만 바로 그 공백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완전히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또 다른 설렘을 찾아 나선다.



가슴이 설레는 순간 떠오르는 것들은 결국 ‘가능성’의 이미지들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파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장면. 그것은 현실의 부족함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부족함이야말로 삶을 전진시키는 힘임을 알려준다. 설렘의 본질은 결핍이다. 다만 그 결핍은 괴로움이 아니라 약속의 형태를 띤다. 설렘은 미래를 향한 예고편이자, 아직 쓰이지 않은 시의 첫 줄 같은 것이다.


설레는 가슴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묻게 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불완전한 감정에 매혹되는가. 답은 단순하다. 설렘은 순간적으로 인간을 ‘살아 있음’의 극점에 세우기 때문이다. 두근거림 속에서 심장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한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실감될 때, 비로소 세계가 생생한 빛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떠오르는 미묘한 것들은.




인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찾아오는 유일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pinterest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거미줄 위의 신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