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기억을 불러내는 가장 은밀한 장치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도로 위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금속 덩어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동차들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달려갔다. 햇살은 바람에 실려 흩날리며 피부 위에 얇은 막을 드리웠다. 땀과는 다른, 그러나 그보다 더 촘촘한 빛의 결. 거미줄 같은 볕이 몸을 감쌌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눈꺼풀은 느리게 깜박였다. 눈을 감을 때마다 볕은 안쪽으로까지 스며들어 혈관을 따라 번져가는 듯했다. 붉은 신호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길고, 동시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틈새 같았다. 그러나 그 틈새는 비어 있지 않았다. 기억은 불쑥 끼어들어 오고, 그 틈에서 낯선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운동장에서 불려 다니던 놀이의 한 조각.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작은 물풀 한 덩어리가 있었다.
물풀을 손바닥에 짜내는 순간, 처음엔 차갑게 스며드는 감촉이 전해졌다. 젤리와도 같지 않고, 물과도 같지 않은, 애매한 온도의 점성이 손금 사이로 흘러들었다. 손가락을 살짝 모으자 액체는 금세 응집하듯 달라붙었다. 투명하지만 미세하게 탁한 빛이 손바닥 중앙에서 고여 있었고, 그 표면은 얇은 막처럼 매끄럽게 번들거렸다.
손바닥을 가볍게 마주치면, 그 액체는 순식간에 끈질긴 성질을 드러냈다. 천천히 벌어지는 손가락 사이로 길고 가느다란 실이 뽑혀 나왔다. 한 올, 두 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줄기들이 허공에서 떨며 늘어졌다. 실은 당기면 당길수록 얇아지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표면 장력이 끝까지 버티며 손가락 끝을 끈덕지게 붙잡았다. 손가락을 더 벌리면, 끈적임은 마치 저항하는 듯 따라오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러 툭, 하고 끊겼다.
그러나 끊어진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줄기가 솟아올라 또다시 이어졌다. 이 과정은 끝날 줄 몰랐다. 손끝에 남는 감촉은 건조하지 않고, 늘 미묘하게 젖은 듯했으며, 공기와 닿을수록 점점 미끌거림과 끈적임이 동시에 강조되었다. 손바닥은 마치 자기 의지가 아닌 듯 그 질감에 매혹되었다. 감각은 불쾌함과 쾌감의 경계에 걸려 있었고, 도무지 손을 뗄 수 없게 했다. 작은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진 이 집요한 실험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감각의 끝자락을 확인하려는 은밀한 탐구처럼 이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손바닥이 하나의 비밀스러운 공장이 되어,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뽑아내는 듯했다.
그 장난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실을 길게 늘여 보거나,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는 순간을 지켜보다가, 결국 끊어지는 찰나의 느낌을 즐겼다. 끈적한 액체가 손가락 사이에 붙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망설임이 찾아왔다. 그 감각을 좋아했다기보다, 그 질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멈춰버리곤 했다. 손바닥을 책상 밑으로 감추던 순간도 있었다. 들키면 안 될 비밀처럼, 그러나 결코 큰 잘못이 될 수 없는 은밀한 습관처럼.
결국 수돗가로 향하게 되는 건 늘 같은 수순이었다. 비누 거품이 손등과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리면, 그동안 붙들고 있던 찐득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는 건 오직 차가운 물줄기와 비누 특유의 청량한 향기였다. 어쩌면 그 모든 놀이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 청량감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묻히고 늘여서 끈적임을 만든 뒤, 결국은 그것을 씻어내는 해방감. 달라붙는 것을 참지 못하고, 벗어나는 순간에야 안도하는 어떤 몸의 습관.
건널목의 시간은 그때의 장난과 닮아 있었다. 빨간불은 억지로 주어진 끈적한 기다림이고, 파란불은 씻어낸 손바닥의 청량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구분 사이에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들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진득했다. 햇살은 땀방울처럼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거미줄처럼 달라붙었다. 바람은 그것을 흔들어대며 더 깊이 엮어버렸다. 지나가는 차들의 굉음은 끊임없이 끈적한 실타래를 흔들어놓았다.
어린 시절의 손바닥은 늘 작은 실험실이었다. 물풀만이 아니라 지우개 가루와 흑연, 분필 가루, 심지어 흙먼지까지도 그 위에서 조합되곤 했다. 감각은 손바닥을 통과해 기억 속에 묻혀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불려 나오듯 되살아났다. 그 질감은 언어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 단순한 촉감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었다.
거미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없는 게 아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며, 햇살이 특정한 각도로 기울 때만 눈에 들어온다. 기억도 그와 같았다. 아무 일도 없던 순간, 문득 비치는 빛에 의해 불려 나온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건널목의 기다림 같은 시간 속에서만 드러난다. 서둘러 달려가는 자동차의 흐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멈춰진 자리에서, 발걸음을 붙들린 시간 속에서만.
빨간불은 건널 수 없음의 신호이자, 기다림을 강요하는 체계였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늘 의도치 않은 기억들을 불러내는 장치로 작동했다. 길 건너편으로 뻗은 보행자의 시선은 언제나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의 내면에서는 손바닥의 질감 같은 오래된 촉각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각은 현실의 볕과 얽혀 하나의 투명한 실타래가 되었다.
볕은 결코 단단하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흩어지고, 잡으려 하면 사라졌다. 그러나 피부에 닿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존재했다.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는 막이 팔과 목, 이마에 걸려 있었다. 신호가 바뀌지 않는 동안, 그 막은 더욱 단단히 엉겨 붙었다. 눈꺼풀을 한 번 더 감으면, 볕은 더 깊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은 손바닥 위 물풀의 실타래가 허공에서 끊어질 듯 버티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건널목의 대기 시간은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음 속에서 마음은 언제나 우회했다. 어린 시절의 손바닥, 수돗가의 차가운 물줄기, 비누 향기, 그리고 햇살의 실타래까지. 모든 것은 단일한 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얽혀 들어왔다. 거미줄이란 본디 직선으로 뻗지 않는다. 비정한 각도와 불규칙한 간격으로 연결되면서도, 전체로서는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기억도, 기다림도 그러했다.
결국 신호등의 붉은빛은 꺼지고, 초록의 빛이 켜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동차는 멈추었고, 도로는 잠시 정적을 가졌다. 그러나 거미줄 같은 볕은 사라지지 않았다. 건너는 동안에도 몸에 휘감겨 있었고, 발걸음을 옮기는 리듬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거미줄은 건널목을 지나도 따라왔고, 그 실타래는 여전히 피부에 남아 있었다.
기다림은 끝났지만, 기억은 꺼지지 않았다. 거미줄은 햇살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도로 위의 수많은 발걸음과 차들의 굉음 속에서, 그것은 오히려 더 은밀하게 드리워졌다. 모든 멈춤과 기다림의 순간은 결국 거미줄 같은 볕으로 돌아왔다.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처럼.
기억은 여전히 손바닥 속에서 뻗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