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신을 신은 문체

분홍빛 신발이 드러내는 언어의 육체성

by 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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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언제나 분홍빛의 신발을 신고 있다. 그것은 발끝을 감싸면서 동시에 발목을 조인다.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맞지도 않는 사이즈다. 다소 불편하고, 때로는 피가 돌지 않는 감각을 남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걷게 만든다. 발이 시릴수록 글자는 살아나고, 발끝이 저릴수록 문장은 호흡을 얻는다.



신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길 위에서 문체를 지탱하는 가장 은밀한 장치다. 무심한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신발은 걷는 사람의 걸음을 결정하고, 그 걸음이 문장의 리듬이 된다. 마치 음악의 박자가 드럼에 의존하듯, 문체의 흐름은 신발의 형태와 재질, 그리고 색깔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분홍색은 본래 양가적인 색이다. 달콤함과 가벼움, 동시에 위태로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지닌다. 문체가 그 신발을 신는 순간, 글자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색을 가진 언어가 되고, 무채색의 의미는 분홍빛으로 채색된다. 독자는 알지 못한 채 설탕에 절인 듯한 은밀한 긴장을 삼키게 된다.


분홍신의 기원은 동화 속에 있다. 끝없이 춤추게 만드는 저주받은 신발, 벗을 수 없는 신발, 결국 피투성이로 몰아가는 신발. 문체가 신는 분홍신 또한 다르지 않다. 한 번 그것을 신은 문장은 결코 평범한 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매끄럽게 걷다가도 갑자기 발이 비틀리고, 춤을 추듯 회전한다. 독자는 이유도 모른 채 그 불안정한 리듬에 휩쓸린다. 마치 이야기가 스스로 자신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문체가 분홍신을 신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자제할 수 없는 과잉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단정하고 정직한 검은 구두 대신, 반짝이는 광택과 눈에 띄는 색을 택하는 행위다. 그것은 위험과 매혹을 동시에 의미한다. 글이 더 이상 정보의 통로가 아닌, 하나의 춤사위로 변모한다. 발끝의 회전이 문장의 여백을 채우고, 독자의 눈동자를 붙든다.



문체의 분홍신은 또한 육체를 고발한다. 종종 문장은 머리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신발은 언제나 몸의 끝에 존재한다. 신발이 닳는다는 것은 걷는 몸이 닳는다는 뜻이고, 문체가 분홍신을 신는다는 것은 결국 언어가 신체의 기억을 빌려 쓰인다는 의미다. 단어 하나가 피곤에 젖고, 문장 하나가 숨결에 따라 흔들린다. 글이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체온의 기록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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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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