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beginning

죽은 은유와 살아있는 나비.

by 적적

은유가 없을 때 세상은 납작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rdQptsJts&list=PLppVAByvRddUENQPuuFFhhGtTA12ienLJ&inde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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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는 똑바로 가는 길을 거부한다. 그 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지만, 도착지는 언제나 허전하다. 단어가 의미에 닿는 순간, 언어의 숨결은 멈춘다. 의미는 설명일 뿐, 진실이 아니다. 은유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비스듬히 돌려 말할 때, 언어는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은유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응축되는 방식이며, 감각이 제2의 몸을 얻는 사건이다.

은유를 이해하는 순간은 마치 번데기 속에서 몸이 뒤집히는 시간과 닮았다. 애벌레는 스스로의 살을 녹여내고, 낯선 조직을 조립하며, 자신이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존재로 태어난다. 은유 또한 마찬가지다. 단어는 원래의 의미를 잠시 해체당하고, 그 파편 속에서 낯선 감각이 조립된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나비로 탄생하는 시간이다.



나비는 단번에 날개를 얻지 않는다. 은유 역시 한 번의 직관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듣는 자의 감각 속에서 천천히 펼쳐지고, 날갯짓을 시작한다. 한 문장은 다른 문장으로 스며들며,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잉태한다. 그 과정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만이 언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무엇을 은폐하는지 눈치챌 수 있다.


언어는 언제나 부족하다. 그 부족함을 감추려는 시도가 설명이라면, 그 결핍을 드러내는 방식이 은유다. 은유는 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그러나 흐림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다.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사라져 버리던 감각, 손에 쥐려는 순간 미끄러지던 세계. 은유는 그 사이에 걸려 있는 투명한 그물을 보여준다.



사랑을 말할 때 은유가 필요한 이유도 같다. 사랑은 도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은 불꽃과 같다’라는 말이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불꽃이라는 이미지가 타인의 몸속에서 전혀 다른 감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불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장마철의 눅눅한 공기, 혹은 미지의 나라에서 처음 마주한 이국의 냄새일 수도 있다. 은유는 그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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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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