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beginning

그림자에 불을 붙이는 언어

by 적적

가장 현실적인 순간에 태어나 가장 비현실적인.

https://www.youtube.com/watch?v=RhwtfTdd0W8&list=PLjzCcuJi4RT0tF7uUa2hpVtn2nNj-n0EL&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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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공기처럼 흔하게 쓰이지만, 언제나 현실의 표면에서 출발한다. 현실이 없다면 은유는 뿌리를 잃은 식물처럼 허공에서 말라간다. 비유가 성립하려면 먼저 구체적인 사물, 감각할 수 있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

눈앞에 놓인 컵, 창밖의 버스, 장례식장의 신발, 좁은 골목을 돌아 나오는 바람 같은 것들. 은유는 거기서 출발해 전혀 다른 세계로 연결된다. 현실이 불편할수록, 감당하기 어려울수록, 은유는 더욱 강렬해진다. 현실은 은유의 원재료이자 최소한의 증거다.



은유를 떠올리면 흔히 허공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은유는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의 심장부에서 도려낸 조각이다. 가령, "사랑은 불꽃이다"라는 말은 실제 불꽃을 본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불꽃의 뜨거움, 쉽게 꺼짐, 예측할 수 없는 흔들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런 은유는 빈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은유를 구성하는 힘은 상상력이 아니라 관찰에서 비롯된다. 세상과의 접촉, 거기서 얻은 경험, 그것이 은유를 현실의 언어로 만든다.



현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을 나열하는 기술과는 다르다. 사실은 단순히 존재한다. 현실은 그 사실의 단면을 정확히 붙잡고, 불필요한 감정을 걷어내며, 그것이 가진 의미의 여백을 드러낸다. 은유가 그 여백을 채운다. 현실이 바탕이라면, 은유는 틈새에서 솟아나는 그림자와 같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병원 복도에 놓인 낡은 의자를 묘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갈라진 가죽, 긁힌 철제 다리, 무심히 붙은 안내문. 그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 의자를 ‘기다림의 흔적이 눌려 있는 장소’라 말한다면 그것은 은유다. 은유는 허공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의 묘사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갈라진 가죽과 긁힌 철제 다리가 없었다면 ‘기다림의 흔적’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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