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야.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었다. 그땐 몰랐었어.
왜 그 순간 그런 걸 물었던 건지 물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 질문은 너무 낯설어서 어느 순간에도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던 거야. 아마도 난 힐끗 쳐다보며 웃었을지도 몰라 아니 그랬을 것 같아.
어떤 질문은 지나고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그 뜻이 그걸 질문을 한 사람의 짓눌린 어깨와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몸을 움직일 수 없이 쏟아지는 모래더미 속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질문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을 나의 눈치 없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곤 해.
지루하던 여름이 모두 지나간 것 같아. 나는 운동장 한가득 쏟아져 내린 낙엽을 모두 쓸고 되돌아보면 다시 흩날리던 낙엽을 바라다보는 학교 경비 아저씨처럼 커다란 싸리 빗자루를 들고 한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
나무는 봄이 지나면 푸른 잎이 떨어지고 여름엔 늦봄에 돋아난 잎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가을에 떨어진 낙엽만 바라볼 수 있는 나는 이제 또 예쁘게 물든 낙엽을 모아 다시 한번 사진을 찍게 될 거야.
부스스 잠에서 깨어 선풍기를 꺼버립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리는 또 다른 선풍기 소리의 전원이 켜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비로소 가을이 스며드는 새벽에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요즘은 잠이 깨고 나면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을 생각해 보자 하고 제법 풍요로운 아침을 생각하지만…. 뭐든 함께하고 싶은 고양이 모란이 가슴 위로 올라오거나 어깨와 얼굴 위에 꼬리를 팔랑거려 그것도 여의찮습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과 그 하늘과 맞닿아 있는 도로의 끝과 그 길가의 수많은 차와 그 차들에 밟히는 길가에 물웅덩이도 되지 못한 빗물 위를 걷습니다
계절이 기온을 낮추고 빗줄기로 서늘해집니다.
10월은 9월이 보낸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서 수많은 문단을 노 저어 흘러 내려가다 보면 강의 하구에 이르러 인사도 끝내고 보낸 사람의 이름 아래 행간을 달리하는 추신이 있습니다.
나는 그 쓰인 추신이 배를 고정한 채 전진하지 못하도록 굵고 끊어지지 않는 긴 줄로 가슴에 닻을 내립니다. 문단을 끝내고 떠오르는 말들은 대충 쌓아 놓은 책들의 작은 무덤입니다. 모란의 가벼운 발걸음으로도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계절이 무너지듯이 쓰러집니다.
보낸 계절의 이름까지 쓰고 덧붙이는 말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정작 해야 할 말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가끔 추신이 없는 편지는 너무 쉽사리 잊힌다는 생각도 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모든 말들을 앞세우고 정작 한 줄의 그 말이 하고 싶은 말의 모든 기원이었을 테니까.
오늘 산책 길은 지난 계절의 추신을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히 밟고 걷는 일인 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발걸음을 조금 더 조심히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발자국이 가을을 닮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