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탑니다.

그늘로 겨울을 준비하는 일.

by 적적

가로수가 처음 심어졌을 무렵 이곳에 살지는 몰랐을 겁니다. 아직 가시지 않는 어둠이 거실을 버티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면 바라다본 것마다 어둠이 깨져 선명해집니다.


응시하는 곳과 만지는 것. 발을 디디는 곳마다 유리 조각이 깨지듯 아침이 스며듭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의자에 앉습니다. 아무 음악이나 켜두고 화면에서 터져 밖으로 배어 나오는 낮고 산만한 불빛만으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탑니다.

거피의 종착역까지 가본 것을 기억해 내봅니다. 대부분 커피의 종점까지 가기엔 커피 노선은 마을버스보다 짧습니다.

커피를 타고 난 뒤엔 그 커피를 탔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실을 맴돌거나 베란다 역을 지나 멀리 집이 보이는 산책로 끝역에서 갈아타고 돌아오는 노선표.

부는 바람과 가을 같지 않은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탔던 종점으로 돌아오는 일.


커피를 타는 일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순환 열차 승차권이라서.


거리로 나섭니다.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가로수 아래 섭니다. 여름이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그늘을 나눠 밟으며 푸른 신호를 기다리던 곳입니다. 그늘은 가로수 만큼 서늘합니다. 꽃이 지고 잎들이 돋고 낙엽이 길가를 점령당하자 건물 경비 아저씨들은 커다랗고 바람이 거세게 나오는 기계를 들고 인도에 쌓인 낙엽을 차도로 퇴거시킵니다.

거리의 청소부 아저씨들은 푸른 봉투로 붉은 낙엽을 담아 가로수 아래 터질 듯이 세워둡니다.

어떤 가로수는 자기가 만든 그늘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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