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유 beginning

미끄러지는 언어의 엔진

by 적적

환유가 불러오는 세계의 속도

https://www.youtube.com/watch?v=u5CVsCnxyXg&list=RDu5CVsCnxyXg&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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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유는 언제나 문장 속에서 은밀하게 출현한다. 그것은 명확하게 부름을 받지 않는다. 대상을 정면으로 지시하지 않고, 슬며시 다른 사물의 그림자를 끌어다가 놓는다. 비유가 서로 닮은 곳을 포착한다면, 환유는 닮지 않은 것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연결을 만든다. 비유가 모양을 고정한다면, 환유는 움직임을 시작한다. 언어가 현실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현실을 미끄러뜨리고 전혀 다른 자리로 내던지는 순간, 환유는 비로소 가속을 붙인다. 마치 좁은 골목에서 갑자기 엔진 소리를 울리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처럼, 환유는 느린 걸음을 견디지 못한다.



가속의 시작은 언제나 미세한 감각에서 비롯된다. 병원 대기실에서 떨어져 나간 손톱자국이 벽에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누군가 오래된 불안을 벽에 긁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자국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환자가 기다림 속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가려운 마음을 벽에 박아 넣은 순간을 환기한다. 자국 하나가 곧 시간의 밀도 전체를 대변하게 된다. 언어가 그것을 붙잡는 순간, 자국은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은 인생 전체의 은유가 된다. 이렇게 환유는 속도를 얻는다. 작은 상처가 세계 전체의 균열로 치환되는 순간, 가속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언어의 속도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창가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오후의 빛과 함께 천천히 기울어질 때, 그것은 단순히 광학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약속이 느리게 늦춰지고, 결국 지켜지지 못한 채 그림자 속에 묻혀가는 과정처럼 읽힌다. 언어는 사실을 고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것들을 전혀 다른 서사로 끌고 가며, 거기서 예기치 못한 속도를 만들어낸다. 환유의 가속은 그렇게 일상적인 장면에서 발화된다.


종이컵이 쓰레기통에 던져져 구겨져 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쓰레기가 아니다. 환유는 그것을 ‘욕망이 소비된 후의 잔해’로 만든다. 혹은 ‘누군가의 손길이 남은 마지막 온기’로 바꿔놓는다. 한낱 종이컵은 이미 사라진 목소리, 떠나간 대화, 다 식은 커피의 온도와 함께 어딘가로 달려가 버린다. 사물이 자기 자리에 머무는 한, 그것은 단순한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어가 다른 자리를 부여하는 순간, 사물은 전혀 다른 의미의 궤도로 이동한다. 이 이동이 바로 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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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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