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삼킨 활자 Ⅱ finale.

문장이 남긴 것은 세계가 아니라

by 적적

착색된 초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8n3usXreL0&list=PLppVAByvRddUENQPuuFFhhGtTA12ienLJ&index=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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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빛을 삼킨다. 빛을 삼킨 자리에서 문장은 색을 낳는다. 색은 의미보다 오래 남고, 의미보다 더 깊이 감각을 흔든다. 어떤 문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처럼 살짝 지나가지만, 어떤 문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색의 잔상으로 남는다. 문학은 바로 그 잔상 속에서 살아남는다.



붉은 방의 탄생

문장을 읽는 일은 방에 들어가는 일과 닮아 있다. 붉은 문장을 읽을 때, 사람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문턱을 넘는다. 그 순간 심장은 낯선 속도로 뛰기 시작한다. 책의 잉크가 아니라 혈액이 글자를 적셨다는 착각. 문장 하나가 온몸을 데우며, 주변의 모든 것이 동시에 붉은 기운으로 물든다. 창밖의 나무조차, 눈에는 핏빛 섞인 초록으로 번져 보인다.

붉음은 단순히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의 땀 냄새를 품고, 분노의 금속성 맛을 함께 머금는다. 붉은 문장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달콤한 동시에 위협적이며, 매혹적인 동시에 불길하다. 그래서 독자는 그 문장 속에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러나 방을 벗어난 뒤에도, 붉음의 잔상은 눈꺼풀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파란 심해의 문장

붉은 방을 떠난 뒤 마주하는 파란 문장은 정반대의 세계를 연다. 그것은 불길이 아니라 심해다. 문장의 속도는 느려지고, 단어들은 해초처럼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다. 독자는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막히는 바닷속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을 느낀다. 빛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심해의 푸른 압력 속에서는 도달하지 못한다.

푸른 문장은 차갑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무관심이 아니라, 고독의 형태다. 그 고독은 때때로 위로가 된다.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깊이에서, 오직 독자만이 그 방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오래 머무르면 폐는 무겁게 눌리고, 호흡은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푸른 문장은 그 자체로 숨을 압도한다.

초록의 질투와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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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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