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체온사이, 존재의 온도를 걷다.
날씨는 오래된 버스대합실, 낡은 커피자판기에서 뽑아 든 커피처럼 서서히 식어간다. 처음에는 뜨거워 입술이 닿기 두렵고, 혀끝에 닿는 순간은 잠시 위태롭다. 그러나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동안 그 온도는 점점 체온보다 낮아지고, 몸 안으로 스며든다. 미지근함은 단순한 온도의 변화가 아니다. 존재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며, 내가 세계와 접촉하는 방식이다. 커피가 식어가는 순간과 내 안의 온도가 맞닿는 곳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균열을 발견한다.
아침 산책에 나섰다. 발걸음은 가벼우나 시선은 흐릿하다. 어젯밤 잠이 너무 늦었기 때문인지, 사물들은 그 형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작은 글씨들, 설명서와 성분표, 광고판에 적힌 글자들은 깨알처럼 존재하며, 눈과 뇌 사이에서 힘겹게 조합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글자는 산산이 흩어지고, 멀리서 보면 다시 모양을 갖춘다. 작은 불개미들이 허리를 꺾으며 행렬을 만드는 듯, 글자들이 눈 안으로 들어와 어딘가로 흘러간다.
사물이 실제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물의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멀리 있고,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손끝 안에 있는 듯하다. 사물과 나 사이의 간극은 눈이 아니라 마음의 틈에서 비롯된다. 나는 너의 눈동자 색을 확인하려다, 오른쪽 눈 흰자위에 작은 경고문이 적혀 있음을 알아챈다. 나라는 존재가 보는 것과 실제
존재 사이의 거리, 그 원근감은 두 눈 사이의 간격과 더불어 마음의 거리에서도 비롯된다.
비는 멈추지 않는다. 회색으로 짙어진 하늘 아래, 물방울은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모든 사물은 젖은 채로 빛을 잃는다. 젖은 도로 위로 번지는 빗줄기는 사물을 희미하게 왜곡하고, 나는 그 왜곡 속에서조차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치지 않기를, 지쳐도 멈추지 않기를, 사물의 지지대 위에서 흘러내리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빈다.
길을 걷는 동안, 시선은 자꾸 흔들린다.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에 비친 건물과 나, 그 사이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발걸음이 정확히 어디에 닿는지도,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확실 속에서 나는 감각을 더 예민하게 한다. 손끝, 발끝, 피부, 귀, 코, 눈. 몸 전체가 사물과 접촉하며, 사물의 온도와 질감을 탐색한다.
길모퉁이에 선 가로등이 희미한 빛을 뿌린다. 그 빛 속에서 사물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제 형태를 찾는다. 나는 그 순간, 사물이 보여주는 온기와 차가움을 동시에 느낀다. 세상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묘한 온도의 층위 속에서 움직인다. 커피처럼, 사물처럼, 시간처럼, 나는 그 미묘한 층위를 통과하며 걸어간다.
사물과 관계, 거리와 감각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젖은 벤치 위에 앉은 사람의 어깨가 내 시선에 들어오고, 그 사람의 숨결이 사물과 뒤섞인다. 나는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세계 안으로 파고드는 방식을 감각으로 읽는다. 사물의 표면, 사람의 피부, 빗물의 냄새, 젖은 옷감의 질감. 그것들은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채 겹쳐지고, 나는 그 사이에서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작은 사물에도 의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로 위 돌멩이, 버스정류장에 버려진 종이컵, 비에 젖은 담배꽁초. 이 모든 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고, 내 존재와 만나며,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조용히 흘러간다. 나는 그 조용한 충돌 속에서 인간과 세계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느낀다.
내리는 비가 멈추지 않는 동안, 나는 지치지 않기를.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고, 사물의 지지대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그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감각과 심리, 관계와 존재가 맞닿는 지점에서 나오는 생존의 방식이다. 발끝과 손끝, 눈과 마음, 온몸으로 느끼는 세계. 나는 그 세계 안에서 서서히 나를 재배치하며, 사물과 나, 사물과 너, 사물과 인간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균형을 찾는다.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기억을 관찰한다. 지난밤 꿈속에서 스쳐간 사람, 오래된 거리의 모퉁이, 버려진 건물의 창문. 그것들은 지금 눈앞의 현실과 섞이며, 사물과 감각 사이의 교차점을 만든다. 사물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사람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모든 것은 미묘한 온도의 층위 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나는 그 파동을 온몸으로 느낀다.
사물과 사람, 거리와 감각, 온도와 시간. 그것들은 서로를 비추며 미묘한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 위를 걷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사물의 온도와 질감, 사람의 숨결과 체온, 마음의 미세한 떨림이 서로에게 반응하며 나를 흔든다. 그러나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고, 사물의 지지대 위에서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임을.
이 산책에서 나는 사물과 관계, 감각과 심리를 동시에 배우고 있다. 비가 멈추지 않는 동안, 사물은 제자리에서 시간을 견디고, 나는 그 위를 걸으며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물과 내가 맞닿는 지점에서.
비로소 세상의 미묘한 온도를 느낀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