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지는 중입니다.
심마니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장화 다섯 켤레가 닳아야 산삼을 본다, 뭐 그런 말이었죠.
딱 들으면 단순한 이야기 같은데, 생각해 보면 꽤 그럴듯하더라고요.
장화가 닳는다는 건 오래 걷고 오래 머물렀다는 뜻이니까.
대체로 길을 급하게 지나가는 사람은 못 보고, 괜히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스친 사람이 결국 보게 되는 거더라고요.
산길을 걸으면 나뭇잎이 각자 기분대로 흔들려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고, 속도나 방향도 일정하지 않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산 전체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발끝은 흙 온도를 그대로 받죠.
햇볕 오래 받은 흙은 따뜻하고, 그늘에 흙은 차갑고.
한 걸음만 옮겨도 감촉이 달라지니까, 빨리 걷겠다고 다짐해도
어느 순간 산의 리듬에 맞춰지더라고요.
글도 비슷해요.
쓰고 고치고 지우다 보면 처음 잡아둔 흐름이 흐릿해질 때가 있어요.
어떤 문장은 괜히 혼자 앞질러 가고, 어떤 문장은 손에 잘 안 잡히고.
가끔은 문장 자체가 숨 막힌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럴 땐 굳이 더 쓰지 않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틈을 바라보곤 했죠.
그러면 아주 작은 호흡 같은 게 들릴 때가 있어요.
글에선 큰 비유보다 그런 미세한 공기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얼마나 더 고쳐 써야 읽는 사람과의 거리가 조금은 줄어들까 싶을 때도 있고요.
둘이 꼭 맞닿지 않아도, 어느 순간 간격이 그냥 줄어드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건 일부러 만든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래 같은 리듬을 견디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걷다 보면 가끔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있죠.
흐름이 끊어진 것 같고, 방향을 잃은 것 같고.
근데 대부분 그런 순간이 방향을 찾기 직전이더라고요.
산에서 길을 잃었다 싶어 멈춰 서면
오히려 주변이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둘러보면,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실루엣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글도 그래요.
막혔다고 느껴져 억지로 문장을 밀어붙이면 잘 안 되고, 잠시 멈춰 문장
주변을 바라보면 이어갈 방향이 단순하게 보일 때가 있어요.
장화가 닳는다는 건 발을 다친다는 뜻도 아니더라고요.
세상과 발 사이를 막아주던 두께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감각이 살아나는 거에 가까웠어요.
밑창이 얇아질수록 흙의 질감이 또렷해지고,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발바닥이 바로 반응하고.
그 불편함 속에서 소리나 냄새 같은 것들이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세계가 천천히 가까워지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지켜야 한다고 믿는 두께가 있어요.
덧붙인 문장들, 숨기려는 설명들, 허전함을 채우려고 늘린 비유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빼다 보면 문장이 점점 얇아지고,
처음엔 불안한데 오히려 더 많은 걸 드러내더라고요.
문장의 리듬과 온도만 남으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심마니들이 장화를 닳게 하며 걷는 건 산삼 때문이겠지만,
사실 얻는 건 산삼 하나만이 아니더라고요.
새벽 공기와 오후 공기의 냄새 차이를 구분하게 되는 감각,
습한 바람과 마른바람이 길 위에서 만들어내는 변화,
어떤 소리는 길을 열고 어떤 소리는 길을 가린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 쌓여야 결국 산삼이 보이는 거죠.
산삼은 축적의 결과였어요.
닳은 밑창, 여러 번 스쳐 간 흙과 공기의 패턴, 몸에 남은 작은 감각들.
그 모든 게 합쳐져 마지막 순간에 더 먼 곳을 보게 해 주더라고요.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해요.
결과물을 향해 가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정에서 생기는
감각을 버티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손가락의 속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가는 침착함,
쉽게 잡히는 단어와 끝까지 버티는 단어의 차이,
문장끼리 부딪칠 때 생기는 마찰.
그런 것들이 쌓여 글의 결이 만들어지죠.
산길에서 방향을 잃었다는 느낌이 사실은
방향을 찾기 직전이었던 것처럼,
글에서도 의심과 망설임이 흐름을 만드는 재료더라고요.
그 시간을 버티면 문장이 조금씩 풀리고,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불러오고,
그러다 보면 처음엔 생각하지 못한 길이 열리기도 하고요.
대체로 그 길은 단순하고, 그래서 더 정확해요.
기교가 줄어든 문장은 자기 박동을 숨기지 않더라고요.
장화가 닳아 없어지는 건 결국 가까워지는 과정이었어요.
발과 흙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문장과 독자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사라지는 일.
그 거리가 사라지면 아주 조용한 도달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모든 글이 저마다의 산삼을 향해 간다고 해도,
그 산삼이 마지막 문장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 서서히 드러나는 작은 호흡에 있는 거였죠.
그 호흡을 알아보는 감각.
그것만 잃지 않으면 장화가 닳아도 괜찮더라고요.
오히려 닳을수록 더 많은 게 보이는 것 같았어요.
산은 그런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산만.
알아주면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