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지지 않기로 한 빛

설명하지 않는 문장이 남기는 불편함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Yam5uK6e-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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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햇살은 계절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태양이라는 직책을 잠시 유예받은 존재처럼 보인다. 여름의 햇살이 사물에 명령을 내린다면, 겨울의 햇살은 허락을 구한다. 창문을 통과할 때조차 소리를 낮춘다. 유리 표면에 묻은 미세한 얼룩을 피해 들어오고, 커튼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스치며 바닥에 내려앉는다. 그 빛은 바닥을 덥히지 못하고, 대신 바닥의 기억을 깨운다. 나무 무늬 사이에 숨어 있던 먼지, 소파 아래 오래된 그림자, 한 계절을 넘긴 생활의 흔적들이 그 빛에 의해 갑자기 가시화된다. 겨울햇살은 온도가 아니라 해상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문장도 그런 방식으로 도착한다. 그것은 쓰이는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생활의 틈새로 스며드는 방문객에 가깝다. 문장은 대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다. 정리되지 않은 거실, 대충 벗어둔 외투, 식지 않은 생각들 사이로 예고 없이 들어온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지만, 빈손이어서 오히려 눈에 띈다. 사람은 그 문장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일상의 리듬에서 반 박자 늦어진다. 리모컨을 누르려던 손이 멈추고, 컵을 들고 있던 손이 공중에서 잠시 망설인다. 문장은 그렇게 신체의 반응을 먼저 바꾼다.



거실은 집 안에서 가장 많은 기능을 부여받은 공간이다. 휴식, 대화, 소비, 대기, 방치가 동시에 일어나는 장소. 그러나 그 기능성 이면에는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쌓인다. 말로 꺼내지지 않은 불만, 이해했다고 착각한 타인의 표정,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넘긴 장면들이 거실의 공기 속에 얇은 층으로 축적된다. 겨울햇살 같은 문장은 그 층을 걷어내지 않는다. 대신 그 위에 빛을 얹는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입자들이 떠오른다. 먼지가 아니라, 시간이다. 방금 전과 오래 전이 동시에 부유하는 장면. 문장은 그렇게 거실을 시간의 저장고로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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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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