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서 배운 감정의 태도
https://www.youtube.com/watch?v=z549cb6ZLFM&list=RDHPTqiuPlaFA&index=2
고양이가 물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 예상보다 길다. 그릇은 이미 채워져 있고, 수면은 방 안의 온도를 받아 미세하게 숨을 쉬고 있다. 창가에서 흘러든 빛이 물 위에 얇게 내려앉는다. 빛은 투명하지만, 투명한 것들 역시 무게를 가진다. 유리창의 얼룩과 오후의 먼지가 그 무게에 섞여 있다. 고양이는 그 앞에서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몸의 중심을 낮춘 채, 물을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말은 충분하지 않다. 그 시선은 이미 몇 번의 계산을 통과한 뒤에야 머무른다.
혀를 내밀기 전, 고양이는 물의 깊이를 확인한다. 깊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보다. 냄새, 반사된 빛의 각도, 그릇의 가장자리가 만드는 경계. 이 모든 것이 한 번 더 정렬된다. 이 망설임은 주저가 아니다. 반복된 생의 경험이 만든 순서에 가깝다.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에도 얼굴은 물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수염은 언제나 경계선 위에 남는다. 젖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젖지 않는 방식이 이미 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장을 대하는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글쓴이는 세계 앞에 앉아 있지만, 세계 속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는다. 사건과 감정은 이미 넘쳐나고, 충분히 마실 수 있을 만큼의 재료가 눈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즉시 쓰지 않는다. 문장을 쓰기 전의 이 정지는 게으름도, 회피도 아니다.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물러나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시간이다. 문장은 갈증을 해소하는 도구가 아니라, 갈증의 윤곽을 남기는 기술에 가깝다.
고양이가 물을 마시되 얼굴을 담그지 않듯, 글쓴이는 감정을 사용하되 그 안에 잠기지 않는다. 잠김은 드라마를 만들지만, 정확성을 흐린다. 감정은 밀도가 높을수록 무거워지고, 무거운 것은 쉽게 가라앉는다. 문장은 가라앉지 않아야 한다. 표면 근처에 머물며,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문장은 종종 고백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고백은 문장이 되기 전의 상태에 더 가깝다. 고백에는 거리감이 없고, 숨을 고를 틈도 없으며, 되돌릴 여지도 없다. 말은 쏟아지지만,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흩어진다. 반면 문장은 언제든 철회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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