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이전의 문법

훔쳐졌으나 읽히지 않은 말들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hEMm7gxBY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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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장은 대개 길모퉁이에서 발견된다. 번쩍이는 간판이나 웅성거리는 대화의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주머니를 더듬거나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틈에서 문장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종종 완성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주어가 사라졌거나 목적어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다.


불완전함이 문장을 문장으로 만든다. 소매치기는 바로 그 틈을 노린다.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방치된 문장, 주인이 없는 문장, 아직 누구의 기억에도 정착되지 않은 문장. 훔친다는 말은 과장일지 모르지만, 그는 가져간다. 주워 담는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주워 올릴 만큼 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은 공중에 떠 있고, 소매치기는 손목을 비틀어 그 공기를 잠시 움켜쥔다.



그는 늘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경계하지는 않는다. 문장을 훔치는 일에는 긴장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긴장은 문장을 굳게 만든다. 굳은 문장은 잘 찢어지지 않는다. 소매치기의 손놀림은 느리고 유연하다. 그는 서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은 이미 선택된 문장들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광고 문구, 엘리베이터 안에서 끝나지 못한 한숨, 새벽 편의점 계산대 옆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을 본다.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라는 문장에 그는 늘 잠시 멈춘다. 자리를 비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장은 언제나 잠시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누군가의 시선이 앉는다.



문장을 훔쳐오는 소매치기는 문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문장이 남긴 흔적을 본다. 문장이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남은 공기의 온도, 말해지지 않은 끝부분의 무게. 예를 들어 누군가 “그때 나는…”이라고 말하다 멈췄을 때, 소매치기는 멈춘 지점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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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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