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는가
밤이 되면 도시는 하나의 문장을 중심으로 다시 배열된다. 낮 동안에는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던 문장,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던 문장. 그 문장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밤이 되면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자리를 바꾼다. 낮에는 기능이던 골목이 밤에는 망설임이 되고, 장식이던 가로등은 약속처럼 서 있다. 도시가 어둠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문장은 처음부터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한 번도 허락된 적이 없었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지는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이 동시에 사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문장은 낮 동안 침묵한다. 회의실의 형광등 아래에서는 떠오르지 않고, 명확한 목적을 가진 대화 속에서는 배제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불이 하나둘 꺼질 즈음, 그 문장은 간판 없는 가게처럼 조용히 문을 연다.
밤에만 문을 여는 가게에는 이름이 없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가게의 문은 늘 반쯤 열려 있고,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희미하다. 그 빛은 초대가 아니라 확인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만을, 이미 그 문장을 한 번쯤 떠올린 적이 있는 사람만을 가려낸다. 문장은 그렇게 사람을 선택한다. 말해질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라, 견딜 준비가 된 사람을.
그 위험한 문장은 언제나 지나치게 간단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식어도 없고, 감탄도 없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이제야 정확한 문장으로 옮긴 것처럼 단정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화려한 문장은 반박할 수 있지만, 단정한 문장은 반박 이전에 사람의 내부로 들어온다. 그것은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존재하던 감정의 정확한 좌표를 찍는다. 오래된 지도 위의 작은 점처럼, 그 점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세계의 축척이 바뀐다.
그 문장이 처음 떠오르는 장소는 항상 구체적이다. 낡은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커피 자국의 가장자리, 닳아버린 키보드의 스페이스바,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종이를 한 장 넘길 때의 소리. 이런 디테일들은 우연이 아니다. 문장을 위한 표면이다. 먼지가 충분히 쌓여 있고, 손때가 묻어 있으며, 오래 망설인 흔적이 남아 있는 표면 위에서만 그 문장은 자신을 허락한다. 매끈한 표면 위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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