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래 Sep 17. 2022

조건 없이 사랑하는 당신에게,

♪ Be your enemy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행복한 모습 보이면 과해 보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몰래 아픈 부분도 예뻐해 주는,

어떤 모습이든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

그런 사람.




목도리와 모자를 둘러 입은 추운 겨울, 밤 12시까지 친구와 노느라 집에 오지 않는 내가 걱정되어,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집 근처 주유소 앞에서 동동거리던 그 사람.

내가 게으름을 피워도, 대다수의 인류가 추구하는 것과 다른 발상을 해도, 나를 싫어하진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 없는 사람. 내가 봐도 꼴 보기 싫은 그런 면도 괜찮다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2016년 가을과 겨울 사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던 나라를 촛불로 태우느라 분주했던 시절, 나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

간호사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핏물을 닦고 새하얀 속싸개로 감싸고는, 50cm 자 보다 조그마한 핏덩이를 누워있는 내게 건넸다. 뱃속에 있을 때도 쑥스러운 듯 얼굴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던 아기는, 눈도 못 뜬 채 품에 안겼다.

얼굴을 몰랐기에, 병상의 회색 난간을 손목이 부서져라 잡으며 아기를 밀어내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 무엇이 나오는 건지 몰라서 아기의 모습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건의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가 바보같이 몰랐구나, 처음부터 이렇게도 아름다운 너였는데.’


나는 병원에서 벌어진 골반뼈가 제자리를 찾길 기다리며 누워 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30년 전에는, 3D로 머리털까지 구경할 수 있는 '입체 초음파'가 없었을 텐데, 엄마는 처음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러다, 살아있었다면 꼬물거리는 손주를 안고선, 덧니가 보이도록 얼굴 근육을 총동원해 웃으며 ‘애가 애를 낳았네’ 농담 한 마디 건넸을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너무 아파서 수박이 나오는 줄 알았다며 투덜대고 싶었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조건 없이 받아주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외로움으로 어깨가 시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감히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고 자란 게 있으니 흉내는 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엄마의 바통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결심한 이후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평생에 걸친 연구가 될 것 같다.

“책 쓴 엄마는 어디 간 거냐, 그 엄마를 데려와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한 소리 할까 봐 무서워서라도, 얼른 그만큼 크기 전에 사랑이 충만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다시 다짐해 본다. 엄마의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누가 어떤 행동을 하던 한결같이 사랑을 선택하겠다고.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애써 모습을 바꾸지 않아도,

당신만큼은 당신을 사랑하는지.



이전 01화 나를 의심해 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