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ver forever
때론 불행이라는 쳇바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지.
하지만 넌 이미 알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언젠가 끝난다는 걸.
영원한 게 없다는 건 축복이야.
첫째와 둘째를 키우는 3년 여 간 나는 일상적인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 언저리를 배회했다. 책 <당신이 옳다>에 따르면,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나 자살 시도를 한 사람도 우울증, 사람을 1명 죽인 사람이나 150명을 죽인 사람도 쉽게 다 똑같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우울증은 분명하면서도 모호한 상태이다. 그래서 육아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을 뿐이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내가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나 의심하게 된 건 어떤 상상 때문이었다.
가족끼리 놀러 가려고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있을 때였다. 둘째가 배고파할 때 바로 젖을 물릴 수 있도록, 양쪽 카시트 가운데에 끼여 앉아있는 것이 편했다. 자리가 좁아 약간 사선으로 앉아있어야 했다. 그러고도 팔이 살짝 짓눌렸다. 햄버거 속 패티가 된 기분이었다.
둘째가 졸렸는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찢어지는 울음이 20분 정도 후에야 끝났다. 달리는 자동차 정면을 멍하게 바라보며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다 남편이 확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내 몸이 튀어 나가 버리면 어떨까? 머리가 앞유리에 꽂힐까? 아니면 몸이 다 빠져나가 밖으로 나뒹굴게 될까?’
내 몸이 유리를 뚫고 앞으로 날다가 도로 한복판에 떨어지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옆으로 팔을 포개며 쓰러지고,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남편과 두 아이들을 바라보다 죽는 장면. 생각은 알아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그러자 죽으면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육아도 더 이상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편해지고 싶어졌다. 죽는 상상 중에 두렵다는 감정은 느껴봤어도 편안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죽음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 죽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 위험한 신호인 것 같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감지했다.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것이 금융위기뿐만은 아닐 것이다. 큰 우울감도 여느 날과 비슷한 하루에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큰 우울이 찾아왔을 때를 돌아보면, ‘원하지 않는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는 좌절감’이 꼭 함께 했다.
어느 가을, 월요일 아침 9시 30분이 딱 그런 날이었다. 첫째 유치원에서 숲 체험을 하는 날, 선생님이 시간 안에 등원해달라고 문자를 보내 놓으셨다.
수저도 설거지통에 그대로 들어있다. 가방에 준비물도 안 넣어놨다. 옷도 뭐 입을지 안 골라놨다. 주말 내내 힘들어서 애들 목욕도 다음날 아침에 하겠다고 미뤘고, 저번 주에 안 깎아서 애들 손, 발톱도 허옇게 길었다. 애들 아침도 줘야 한다. 발등에 불 떨어졌다. 낭패다. 어제의 게으른 내가 야속했다. 2시간 만에 모든 준비를 다 끝내야 한다.
1시간 40분 만에 한 가지 빼고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둘째의 손, 발톱 깎기.
10분 안에 준비를 끝내고 나가야 제시간에 유치원에 도착할 수 있다. 둘째가 가만히만 있어준다면 3분도 안 돼서 끝낼 수 있다. 포기하고 가기에는 친구들을 할퀼 만큼 길다. 하지만 둘째는 손, 발톱 깎는 걸 너무 싫어한다. 손톱을 깎으려고 하면 발버둥 치고, 발톱을 깎으려고 하면 발가락을 오그린다. 과연 10분 안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역시나, 10분째 원하는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앉아! 가만히 있어!” 호통을 쳐도 소용없었다. 첫째는 호통을 치면 울거나 말을 듣거나 도망가는 식으로 반응을 해준다. - 솔직히 말하면, 혼내는 맛이 있다. – 그런데 둘째는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도 첫째와는 다르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거나, 대꾸도 없이 자기 장난감만 가지고 논다. 어쩔 때는 정색한 내 표정을 보고 웃기다는 식으로 깔깔거린다.
평소 같으면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고 훈육할 시간이 있을 텐데, 지금은 당장 나가야 해서 그럴 여유가 없다.
이번에는 정색하며 말해보았는데도 아이가 자동차만 쳐다본다. 내 일정에 지장을 주는 아이가 밉다. 신경이 곤두선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울화통이 치고 올라온다. 화난 나는 뵈는 게 없었다. 아이가 그저 장애물로 보였다. 나는 시계를 10초 단위로 확인한다. 결국 아이를 꽉 잡고 밀어붙인다. 오그리는 발가락을 때렸다. 둘째가 울기 시작한다. 별것도 아닌데, 3분이면 끝날 일을 15분째 시키는 이 작은 문젯거리가 싫었다. 때려도 말을 듣지 않아, 주차콘을 들이박는 트럭처럼 아이를 밀쳐버린다.
밀치는 바람에 코피가 났다. ‘아차’ 싶었다. 다행히 혈관을 건드린 건 아닌 것 같다. 겉에만 살짝 스쳤나 보다. 아이의 코피가 면 손수건에 배어든다. 첫째가 그 광경을 지켜보다 작은방으로 피신한다. 방어할 줄 모르는 작은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왜 다친 줄도 모른 채, 아이는 울면서 상처를 치료하려 애쓴다.
죄책감이 온몸에 번진다. 어른이었다면,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상사였다면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만만하게 봐서 그런 것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강한 사람들에게는 찍 소리도 못하는 비겁자가 됐다.
앞으로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쏟아져 나오는 독한 행동을 막지 못했다. 인류의 중차대한 일 때문도 아니었다. 겨우 발톱이었다. 그것 하나 안 깎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아픈 기억으로 물들였다.
겉으로는 선해 보이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 자식에게 손찌검하면서 행복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 그런 모순적인 사람이 나라는 게 싫다. 분노 같은 역겨운 감정을 도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하는 것은 내가 그런 모순덩어리여서가 아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서다.
아무리 애써도 계속 이렇게 후회하면서 살까 봐 두렵다. 특히 행복은 그렇다. 그동안 행복해지려고 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이런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노력을 5년밖에 안 했지만 만약 30년 간 노력했는데 한 순간에 잘못된다면, 나는 그 좌절을 이겨낼 수 있을까?
‘힘들다. 사는 게 갑갑해. 앞으로도 이렇게 불행할까?’
나는 이런 생각으로 기분이 나아지거나 일이 잘 해결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생각은 보기 싫은 영화를 계속 돌려보는 것과 같다.
외할머니는 처음 부산에서 살림을 꾸렸을 때, 방에서 아이들끼리 싸웠을 뿐인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방을 빼 달라 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신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예전이면 그 집주인도 돌아가셨을 테니 이제 그만 용서하시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그 설움을 붙들고 계신다.
우리는 그 집주인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맥박이 영원히 뛰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분노도 좌절도 두려움도, 이제 그만 놓아주자. 올 때마다 이별을 고하자.
“잘 가, 나의 아픈 감정아. 이제 그만 너를 놓아줄게.”
레스터 레븐슨은 <깨달음 그리고 지혜 1>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실체,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영화관의 스크린과도 같다. 우리의 참자아는 변함없는 스크린이고, 세상은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그림자들이다.
우리의 참자아인 스크린은 움직이지 않지만 스크린 위의 그림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리가 스크린 위의 인물들과 온갖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불도, 홍수도, 폭탄도 스크린을 건드리지 못한다. 불은 스크린을 태우지 못하고 홍수도 스크린을 적시지 못하고 폭탄도 스크린을 파괴하지 못한다.”
나의 모든 불편한 일이 결국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걸, 어떤 감정이든 올라오는 순간 알아차리고 싶어서,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어리석은 행동을 점점 덜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전의 바보같이 행동했던 나를 용서하고 싶어서,
오늘도 울다가 웃다가 깨닫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