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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Oct 22. 2022

오르골 같은 당신에게,

♪ Orgel

어릴 적 나는 엄마가 천사, 아빠가 악마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아빠의 피를 지우고 싶었다. `아빠=악마`라는 공식 같은 게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사람들이 내 모습에서 엄마를 찾아낼 때면 안심이 되고, 불쑥 내 모습에서 아빠가 튀어나올 때면 혼란스러웠다. 그 당시의 내게 아빠는 ‘아빠’라는 종족의 외계인이었다.

그런데 21살이 되어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 그날은 아빠의 우주에서 모든 별이 사라진 날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게는 그가 아빠라는 종족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고마운 날이었다.




막 26살이 된 추운 겨울,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지금의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의 동공에는 당황만 맺혀 있었고 그 어디에도 기쁨은 없었다. 우리는 철저히, 처절히,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었다.

뱃속의 아이가 엄마라고 고른 게 하필 나였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불안해하는 성격에 여드름 많이 나는 피부와 O다리를 닮을 텐데, 이런 피곤한 유전자로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할 아이가 불쌍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아이 씨, 뭐 이딴 사람 배에서 나왔어. 이번 생은 글러 먹었네.’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받을 이 아이에게 ‘좋은 것은 못 주겠지만 적어도 피해는 끼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공허를 메우기 위해 피던 담배를 끊었다.


그렇게 4달이 지나고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을 때,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배를 노크하는 아이가 느껴졌다. 그럴 때면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경이에 도취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쌍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부모라서 미안했다.

그러다 생각 하나가 튀어나와 모든 것을 뒤집었다.


'이제부터 내가 행복한 가족 만들면 되잖아. 닮고 싶은 엄마 하면 되잖아.'


내 아이가 불쌍해지지 않으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나 같은 사람의 딸로 태어나서 '뭐가 기쁘겠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기쁘겠는가!'로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행복한 가족, 닮고 싶은 엄마 까짓 거 하면 된다고, 아직 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좌절하지 말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태어난 첫째가 돌을 넘긴 즈음이었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하루를 도화지에 바르고 반으로 접은 듯한 날이었다.

아기는 잠을 잘 때,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린다. 베개는 머리 주위로 동그랗게 축축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게 꼭 작은 포도알 같다. 입술은 꿈나라에서 무지갯빛 유니콘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듯 ‘오’ 모양을 하고 있다.

흐트러진 아이의 머리칼을 손 빗으로 쓸며 바라보다 불현듯, 아이를 쓰다듬는 이 감각이 흩어지는 게 싫었다. 뇌가 이 순간을 다시 꺼내 볼 수 없는 심연으로 보내 버릴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아이와 닿는 이 인연을 잃어버리면 온 세상이 바스러질 것 같았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조차 고통인데, 하물며 아이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나는 파멸할 것이 분명했다.

그날, 나는 사랑을 처음 겪은 아이 같았다.




둘째가 두 돌을 갓 넘은 여름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에 갔다. 내리쬐는 직사광선에 눈이 시렸다. 첫째는 유모차로, 둘째는 힙시트로 안고 걷는데 둘째의 등과 내 배가 닿아서 땀띠가 났다. 아이들은 엄마의 불쾌지수에는 관심이 없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그들과 밖에 있기 싫어하는 나의 욕구를 모두 맞추기 위해, 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으로 피신했다. 아이들도 마음에 들었는지 반짝거리는 LED 등이나 전시된 인형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갔다. 얼굴이 뚫린 등신대에 얼굴을 내밀며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번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올려다본다. 어른 가슴께 높이에 있는 창턱이었다. 올라가면 위험한 높은 곳인데 첫째가 올려달라고 성화다. 주위를 살폈다. 직원도 관광객도 없이 우리뿐이었다.


“여기 원래 올라가면 안 되는데 딱 한 번만 올라가는 거야, 알았지?”

“웅!”


첫째가 갑자기 높이 올라가 겁났는지 꼼짝 않고 서있었다. 그러다 적응이 됐는지 한 걸음씩 옆으로 걸었다. 혹여나 떨어질까 봐 아이가 걸을 때마다 같이 옆으로 걷는다.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둘째가 내 손을 가져다 창턱으로 잡아끈다. 자기도 올려달라는 소리다.


“너도 한 번만 올라가, 알겠지?”

“…”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 들어 올리자 둘째는 신났는지 발을 구른다. 창턱에 앉자마자 등까지 돌리고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을 열심히 구경한다. 가까운 곳에서 보면 날파리가 들끓고 진액으로 끈적거릴 나무들도, 유리창 너머로 보니 그저 장관일 뿐이다.


아들은 산을 한참 보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누워 버린다. 줄 없이 뒤로 번지점프를 한 격이다. 내가 뒤에 서서 아들을 받쳐주지 않았으면 머리가 깨질 뻔했다. 온몸이 저릿할 만큼 놀랐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떠나기 싫다는 아이들을 닦달하며 집으로 향했다.


유모차를 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들은 내가 뒤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로 누워 버리면 위험하다는 걸 몰라서 신경 쓰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때 내게 안기고 재밌다며 까르륵 웃던 아들의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뒤에 있을 거라고 100% 확신하는 그 표정을.

모르는 게 약인 걸까. 이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요리를 태워먹은 엄마인지, 네가 잠들지 않아 얼마나 많은 날을 힘들어하며 울었는지,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불안정할지, 그런 것은 하나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는 그저 엄마가 무조건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라고 믿었다. 온몸을 내맡겼다.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안정을 찾았다.

나는 그 온몸으로 주는 믿음에 압도되었다. 부모의 내리사랑은 지극하다 한다. 하지만 자식의 ‘올림사랑’은 더욱 조건이 없다. 책 <몸은 기억한다>에서 저자는 “열 살 미만 어린이 중에서 집에서 고문을 당하고도(뼈가 부러지고 피부에 화상을 입은 흔적으로 학대 사실을 보여 준 아이들), 가족들과 함께 사는 쪽과 보육 시설에서 사는 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 후자를 택한 아이를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원했어도 원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시절 전체를 내어준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부모에게 받은 그것을 전한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아이에서 어른으로, 어른에서 다시 아이로. 우리 삶은 돌고 도는 오르골 같다.

언젠가 나의 아이도 내가 아빠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악마라며 자유를 갈구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나는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또 다른 시절의 ‘나’에게 미소를 건네야겠다.

그들의 시절을 안아주어야겠다.




빛나는 모습이 진짜 나인지,

가려진 모습이 진짜 나인지

너는 고민하고 있을까.


나는 우리가 그저 여러 음색들로 이루어진 오르골 같아.

아름답다가도 삐꺽하는, 삐꺽하다가도 결국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 Yang Shuo,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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