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꼭 디자인회사만 다닐 필요는 없다.

절대 그럴 리 없어

by 나라연

"주말에 할 일 없는 놈들 있지? 그러면 서울에 한번 다녀와라! 서울 가면 볼게 천지삐가리다.

길거리 간판만 보고 와도 공부 많이 될끼다.

놀라믄 서울 가서 놀아라. 이 좁아터진 촌구석에서 놀 생각하지 말고 알았제?"

그래픽 디자인 수업시간에 담당 교수님이 잊을만하면 우리에게 했던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며칠 후 처음으로 면접제의 연락을 받았다.

학교 과제물을 모아둔 포트폴리오백을 어깨에 메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지하철 노선도 안 내지를 살피고 지하철을 타고 신사역에 내렸다.

회사는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여자 3명이 근무하고 있는 작은 디자인 사무실이었다.

세 시간이나 걸쳐 올라온 시간 만큼 면접은 길지 않았다.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집에 내려가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전화는 안 오고 서울의 다른 회사에서 두 번째로 면접제의 연락을 받았다.


두 번째 면접을 보고 입사한 첫 번째 회사는 충무로에 있는 팬시캐릭터디자인 회사였다.

그곳은 팬시캐릭터를 활용해 어린이 수첩, 스케치북, 연습장, 크리스마스 카드, 청첩장, 팬시스티커 디자인 제작하여 문구회사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였다.

우리 회사이름으로 제작된 제품은 없었지만 내 디자인이 제품으로 출시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해 본 곳이기도 하다.

문구점 어딘가에서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그해 겨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내가 디자인했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목도했을 때 느꼈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고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초짜 디자이너로서 보람을 느꼈던 때였다.


디자인 회사를 퇴사하고 1년 동안 프리랜서로 낙성대 근처에 있는 작은 영화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영화의 그래픽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그 다큐멘터리영화는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작이 되었고 스텝 자격으로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영화제 측에서는 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을 제공해주었다.

출품작은 영화제에서 2회 차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을 했고 상영을 잘 마쳤다.

이후 서울 독립영화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상영을 진행했으며, 지방 도시를 돌며 상영회를 진행했다.

계속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했다면 이런 경험은 절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제작된 DVD의 그래픽디자인과 커버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세 번째 회사는 대학 선배와 함께 포토상품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다.

사진을 활용한 디자인 맞춤상품을 판매했다.

주력상품은 포토달력이었으며, 포토카드, 포토쿠션, 포토시계등 다양한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했다.

주문은 온라인이었지만 제품에 제작에 필수인 사진은 실물로 받았다.

주문자에 사진을 받으면 사진을 스캔해서 일러스트프로그램을 활용해 미리 제작해둔 디자인 폼안에 사진을 넣고 기념일과 문구를 넣어 제작하는 방식으로 모두 수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당시는 막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는 초기였다.

그에 발맞춰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디지털사진 인화서비스 회사들이 쏙쏙 등장했다.

그들은 포토맞춤상품을 보다 쉽게 주문하고 제작할수 있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본과 기술에 밀려 자연스럽게 3년 차에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으로 홈페이지, 쇼핑몰 디자인, 서비스 운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네 번째 회사는 을지로에 매장을 겸한 작은 기획사무실이었다.

디자인 사무실이라기보다는 매장에 가까웠고 손님도 응대도 해야 하는 곳이었다.

명함, 전단지, 스티커, 영수증, 봉투, 행텍, 카탈록, 행사용품, 판촉물 등 퀄리티보다는 스피드 위주의 단순 디자인 업무를 했던 곳이었다.

간혹 디자인이 필요한 카탈록 의뢰가 들어온 건 별로 없었다.

대부분 행사나 개업하는 곳들에서 의뢰한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납품날짜에 맞추려면 디자인을 빨리빨리 쳐내야 했기 때문에 디자인 퀄리티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성격상 대충대충은 없었다.

손님 응대하랴! 디자인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디자인부터 인쇄, 후가공, 판촉물 제작까지 경험해 본 곳이어서 디자이너로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인쇄에 대한 지식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디자이너로서 고급 디자인회사를 고집하지 말고 한 번쯤은 인쇄골목이라고 일컫는 을지로 일대 기획사에서 근무를 해보는 것도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거라 본다.

몰론 급여가 낮은건 감수해야한다.

단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면 충분하다.


다섯 번째 회사는 디자인 회사가 아닌 LED조명제조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곳에서 영업지원팀의 일원으로 오로지 자사만을 위한 홍보 마케팅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납품일자에 쫓길 필요도 없어서 확실히 여유 있는 환경에서 디자인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자회사의 제품을 판매해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의 디자인적 마인드보다는 마케팅적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섯 번째 회사는 강남에 있는 건축내외장재 제조유통회사였다.

자사 다지인 업무를 담당할 디자이너를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

실무자와 면접을 보고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강남대로를 걷고 있었다.

방금 전 면접을 봤던 실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멀리 안 갔으면 임원면접을 봐야하니 다시 사무실에 와달라는 전화였다.

임원과 약 30분 정도 면접을 마치고 며칠 후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회사는 대구에 본사와 공장이 있었고 서울에 마케팅본부를 둔 회사였다.

그만큼 마케팅본부는 회사 매출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국내영업팀, 해외영업팀, 디자인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디자인팀은 나 혼자였기에 그 임원과 디렉트로 업무지시를 받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회사 홈페이지 리뉴얼, 회사소개서 리뉴얼, 제품 카탈로그 리뉴얼, 제안서 리뉴얼, 마케팅용 회사 다이어리, 캘린더, 전시부스, PPT발표자료까지 디자인 수준을 높여 최대한 디자인 역량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짧게 근무했지만 매우 기억이 많이 남는 회사다.


이후 사업자를 내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했다.

때마침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KBS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라이선스 계약을 했다며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캐릭터 지류 상품인 스케치북, 연습장, 노트, 어린이 피아노교재(20권) 등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디자이너로서 재미있게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아직도 오픈마켓에서 팔리지 못한 지류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여덟 번째로 취업한 회사는 영등포동에 있는 잡화매장사업과 전시회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면접제의 전화를 받았다.

채용사이트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면접제의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다음날 회사 대표님과 한 시간 넘게 면접을 보고 채용되었다.

그곳의 업무는 자사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박람회 업무였다.

디자인 업무 보다는 주로 전시회 업무를 담당했는데, 참가기업 모객과 전시장비협력업체 관리 업무를 맡았다. 킨텍스에서 2년간 두차례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를 했다.

일반 디자인회사였다면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곳 역시 기억에 많이 남는 회사다.


아홉 번째 회사는 영등포에 있는 명함전문제작회사였다.

나름 디자인업에 오래 종사했지만 대기업 명함을 전문으로 제작해 납품하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게 매우 신기했다. 내 업무는 기업의 서식류, 인쇄물 디자인 제작 업무였다.

이곳에서 근무하기 좋았던 점 하나는 거래처 담당자들이 주로 비서실 직원들이다 보니 매너가 하나같이 좋았다는 점이다. 크게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납품 일정도 충분히 조율이 가능하여 납품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예전 다녔던 디자인회사에 잠깐 근무하다가,

현재 열 번째 회사로 무역, 컨설팅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보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토목을 전공해 첫 직장인 건설회사를 제외하고 대학에서 전공한 산업디자인 전공을 살려 줄곧 디자이너로 살아오고 있다.

위와 같이 이직 스토리를 보다시피 나는 대학 졸업 후 무려 10곳의 다양한 회사에 근무를 했다.

그중에 디자인 회사는 3곳뿐이다.

그 3곳 중에서 오로지 디자인 업무만 한곳은 첫 번째 직장인 팬시캐릭터 디자인회사 뿐이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아 디자인 4~5년 차 디자이너인 경우, 디자인전문 회사만 고집하지 말고 일반회사에 이직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일반회사에 근무하게 되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유기적인 업무를 경험할 수 있고 디자인적 시각에서 영업적인 시각으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회사는 보통 3~10인 이하 소규모에다 모두 같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사방에 디자이너들만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가두리 약식장에 갇혀있는 물고기처럼 될 수 있다.

그리고 디자인적 사고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직장문화 또한 매우 단조롭다.

하지만 20인 이상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일반회사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회사생활이 재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회사의 약점인 문서작성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직군이 있는 일반회사를 경험한 이후 디자인전문회사보다는 일반회사에 디자인부서가 있는 회사를 찾아 이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디자이너라서 반드시 디자인전문회사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만의 좁디좁은 세상을 살아왔을 것이고,

한정된 디자인적 시야에 사로잡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이 든 고집 센 당나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난 이직을 참 많이 한 편에 속한다.

누구는 진득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덕분에 디자인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업계를 경험한 것이 다양한 곳에 이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기 마련이다.

좁디 좁은 우물 안을 벗어날 생각 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절대 그럴 리 없다'라고

스스로 만들어 낸 고정관념을 버려야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반드시 이래야만 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상황은 언제든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단정지어 버리면 안된다.


내가 언제까지 디자이너란 직업을 유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머지않아 내가 뛰어놀았던 좁디좁은 우물 안에서 그만 벗어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 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 함부로 예단하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거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절대 그럴 리 없어'란 생각은 잊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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