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심리학 용어로 위로받다.
볼 일이 생겨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야 했다.
아이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건 당연한 도리다.
"얘들아, 선생님이 월요일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 와요. 다른 선생님 오시면 말씀 잘 듣고 놀아야 해요."
그러자 아이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네? 왜요... 선생님 왜 안 와요?"
불안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목소리들. 평소의 짓궂은 표정은 사라지고 눈빛이 흔들리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때 우리 반의 에이스이자 미래의 서울대생 예약자 예진이가 물었다.
"혹시... 지난번에도 오셨던 그 무서운 선생님 오세요?"
"잉? 무섭다니? 응? 그 선생님이 무서워?" 하고 되물으니 옆에 있던 시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냥 무서워요."
그러자 옆자리에서 건호가 말했다.
"선생님, 그래도... 간식은 주죠?"
순간 아이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역시 돌봄 교실의 하루는 간식이 빠질 수 없다. 걱정과 서운함 속에서도 간식은 생존의 문제다.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해 주실 선생님은 작년에도 올해도 여러 번 대체를 맡아주신 나와도 친분이 깊은 베테랑 선생님이시다. 예전엔 미술학원도 하셨고 짓궂은 아이들도 척척 다루는 분이라 늘 믿고 맡겼다.
'왜 그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거지?' 그래 카리스마가 있긴 하시지... 서운함 반 궁금함 반으로 나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너희들은 선생님한테도 야단맞을 때도 많고 화내면 무서울 때 있는데 선생님은 안 무섭니?"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난 속으로 '나도 엄하게 하거늘...'
그때 예진이가 깨달은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그건요! 선생님이 안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서울 땐 무서운데요. 우린 작년이랑 올해도 선생님이랑 애착관계가 이미 형성되었잖아요. 그 선생님은 몇 번 안 봐서 낯설어서 무서운 거예요."
순간, 나는 빵 터졌다. '애착관계'라니! 이런 용어가 돌봄 교실 학생 입에서 나올 줄이야.
그때 시온이도 옆에서 손을 들며 외쳤다.
"맞아요! 그거예요!"
"헐... 이 아이들 나를 위로한다고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심리학 용어까지 동원할 줄이야. 책을 많이 읽는 예진이가 다르긴 다르네..."
"선생님과는 이미 애착관계가 형성되었잖아요."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우리 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이들은 내가 화를 내도 야단을 쳐도 그 밑바탕에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뢰'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예측 가능한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안정 애착'의 힘이었다.
반면, 가끔 오는 대체 선생님은 친절해도 아이들에겐 낯선 존재였나 보다. 애착 대상을 벗어난 낯섦이 "무섭다"로 표현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하단 말이지 아니면 역시...우리 반 예진이가 남다른 걸까?
"이야 예진이 보유 돌봄 교실이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아이에게 논리로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을 받은 이 기분. 돌봄 선생님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은 듯한 감동만이 남았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애착 보고서'를 품고 나는 휴가를 즐기려 했다. 그리고 화요일에 돌아가면 이 소중한 애착관계의 증명자들을 반갑게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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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브런치북 〈가을빛에 도담도담 놀아요〉 편이 벌써 고작 12화네요. 가을이 너무 짧네요.(짧은 가을, 괜히 핑계 대는 중 ㅎㅎ) 이제 겨울편에서 우리 아이들 이야기로 다시 만나야 할까요?아니죠~ 아직은 가을 고고~~~
#돌봄 교실
#애착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