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웃었다.
이 글은 꿈꾸는 아재 작가님의 글 《사람 꽃》을 읽고 문득 돌봄 교실에 놀러온 고학년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topman/32
요즘 왜 이리 깜빡깜빡하는지(예전엔 '기억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말이죠.) 돌봄 교실에 아이들이 오면 늘 출석체크가 우선이다. 한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돌봄 교실을 거쳐간 아이들도 참 많다. 특히 자매, 남매, 형제들은 어쩜 그리 얼굴이 똑 닮았는지 학기 초에는 지금 다니는 동생들한테 언니 이름이나 형 이름을 불렀다가 "선생님, 그 이름은 언니 이름인데요" 하고 정정당하는 웃픈 실수를 하기도 했다.
매일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돌봄 교실을 거쳐갔던 5~6학년 아이들을 복도에서 종종 만나곤 한다.
"ㅇㅇ반 돌봄 선생님 이시다."
"선생님, 행복하세요!"
서로 행복을 빌어주고, 손을 올려 딸랑딸랑 흔들어주는 아이들, 간혹 와서 폭 안기는 아이들까지 있으니 난 정말 행복한 여자다.
쉬는 시간에는 돌봄 교실로 놀러 오는 아이들도 있다. 교실이 왜 이렇게 좋아졌냐며 감탄사를 연발하다가도 "우리 다닐 땐 왜 리모델링 안 했어요?" 하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아이들은 물만 줘도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얼굴도 변한다.
어느 날, 낯선 여학생 두 명이 돌봄 교실 문 앞에서 날 부른다.(난 혼자 있을 때 돌봄 교실 문을 열어둔다.) 한 명은 자세히 보니 어렴풋이 알 듯도 한데 다른 한 명은 이름까지 가물가물했다. 6학년이었다. 나는 그저 반갑게 웃어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초콜릿을 좀 쥐여주면 돌아가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름이 가물가물한 여학생이 갑자기 해맑게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우리 이름 기억나세요?"
아뿔싸!
머릿속이 하얗다 못해 버퍼링이 생기면서 새까매졌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고 불러주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에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머릿속에서 레이더를 초고속으로 굴리면서 옆에 있던 친구 이름을 먼저 불렀다.
"어, 알지 진... 진서고.."
"넌... "
내가 살짝 머뭇거리는 걸 눈치챈 진서가 슬쩍 힌트를 준다. 손가락으로 공중에 '유'를 쓰는 시늉을 하는 거다.
그 순간 번뜩!
"알지, 유....."
"유... 진이잖아. 유진이, 호호호"
"와~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당연히 알지. 그럼!"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선생님 기억력 좋으시네요." 하며 웃는 것이다.
"선생님 또 놀러 와도 되죠?"
"당연하지"
그렇게 웃는 사이 종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려 할 때 난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진서, 유진아. 그럼 선생님 이름 기억나?"
문밖을 나간 아이들은 동시에 돌아보더니 아주 맑고 해맑은 목소리로 답한다.
"아뇨?"
헐..
그래도 나를 찾아와 준 돌봄 교실 선배들이 있어 기분이 아주 좋았던 날이다. 내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은 6학년 아이들의 웃음꽃을 보았던 날이었다.
#돌봄 교실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