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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라난 특별한 인연

by 빛나다온

내가 쓴 돌봄 교실 이야기를 읽으면 그저 웃음이 가득하고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마냥 따뜻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돌봄 교실의 하루는 언제나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유독 마음을 기울였던 '한 아이'와의 시간은 기쁨과 어려움이 함께한 계절이었다.


그 아이는 아침마다 약을 복용해야 했고, 또래보다 발달이 조금 느린 편이었다. 약 때문인지 입맛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고, 밥도 잘 먹지 않아 또래들보다 날씬했다. 작년에 이어 2년째 돌봄교실에 함께하고 있다. 처음 만났던 날은 지금도 또렷하다. 새하얀 피부, 가냘픈 몸, 힘이 빠진 목소리. "선생님, 우리 아이가 또래보다 조금 느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어머님께서 건넨 이 한마디는 아이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전혀 없었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작은 책임과 큰 믿음을 함께 안겨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아이를 조금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더 다정하게 살피며, 조금 더 천천히 기다리게 되었다.


프로그램 수업에는 참여하려는 의지가 약했고, 체육시간이면 몸을 잔뜩 움츠렸다. 간식도 입에 맞는 것만 먹었고, 방학 때 어머님이 정성껏 준비해 주신 도시락도 대부분 남기곤 했다. 가끔 약을 복용하지 못한 날이면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두 아이의 이야기를 차근히 들어주고 두 가정에 상담 전화를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쉽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돌봄 교실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컸다. 귀가 시간이 앞당겨져 보호자가 일찍 오기라도 하면 아이는 금세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더 놀다 가고 싶은데." 그 말에 어머님과 할머님은 늘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작년에도 올해도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을 참 잘 해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따뜻한 안도감과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그 아이를 챙기며 나는 특별한 아이들의 부모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조심스러운 애정을 품게 되었다. 그런 아이가 12월이면 이사를 간다. 두 달 전 어머님과 통화로 이사 소식을 들었는데 며칠 전엔 전학 일정이 잡혔다며 문자로 다시 알려오셨다.

어머님께서 보내오신 문자

지난번 동현이처럼 새 아파트 분양 일정에 맞춘 이동이었다.
"또 한 명이 떠나는구나."
작년과 올해 함께했던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밥을 잘 먹지 않아 걱정하던 날들, 프로그램 수업에서 소심하게라도 손을 들어보던 순간, 만들기 수업 땐 옆에서 같이 만들어 주던 모습 색칠공부 이미지 뽑아달라고 조르던 순간, 귀가 시간마다 "선생님, 내일도 올게요." 라며 웃던 아이의 목소리까지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작은 빛처럼 남았다.

돌봄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하지만,
이 아이는 조금 더 오래 마음에 머무를 것 같다.
나에게 더 많은 배움을 주었고,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이제 곧 다른 학교에서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돌봄 선생님을 만나겠지.
그곳에서도 그 아이답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날 거라 믿고 응원하고 싶다.

이 아이와 함께한 계절들을 마음속 앨범 속 한 장처럼 고이 간직한 채 또 다른 아이들을 맞이할 것이다. 돌봄 교실의 하루가 꼭 밝지만은 않아도,
이렇게 마음에 조용한 빛을 남겨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다.




#돌봄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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