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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라는 이름의 투명한 마음

소년은 왜 좋아하는 소녀앞에서 장난스러워 질까

by 빛나다온

돌봄 교실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유난히 눈에 띄는 2학년 민제와 예진이의 관계는 나에게 잔잔한 미소를 선물한다.


​둘은 장난스럽게 "공식 커플"이라 선언했다.
​물론 9살 아이들에게 커플이란 어른들이 생각하는 거창한 정의가 아닐 것이다. 서로 가장 재미있는 장난을 치며 옆에 앉고 싶은 친구 사이 정도일 테다. 하지만 그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귀여운 연애' 드라마의 시청자가 된 기분이다.


​키가 크고 잘생긴 장난꾸러기 민제는 놀라운 리더십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예진이는 또박또박 야무지게 말하며 밝은 성격으로 책을 끼고 살며 서울대에 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아이다. ​흥미로운 것은 민제가 바로 이 당찬 예진이 앞에서 유독 더 장난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옛말에 남자는 나이를 막론하고 소년이라고 했던가. 그 에너지는 예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인 것이다.


​간식 시간만 되면 민제는 자기 지정 자리가 따로 있음에도 기어코 예진이 옆으로 슬쩍 다가와 앉으려 한다. 예진이는 "니 자리에서 먹어" 하고 튕기면서도 민제가 곁에 오면 은근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둘이 붙어 있으면 수다 폭탄이 터져버리기에 일부러 떨어뜨려 놓아도 눈만 마주치면 금세 킥킥거리며 웃음이 터진다.


​"또 시작이네 시작이야~"


​친구들의 장난 섞인 야유 속에서도 둘의 관계는 그렇게 단단하고 따뜻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서로를 조금 더 챙겨주는 순수한 친구 관계 그 아름다운 마음에 나는 그저 즐거워질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마음'이라는 건 참 미묘한 것이다. 어느 날 작은 사건이 생겼다.
​점심시간 후 민제가 예쁜 색종이로 접은 딱지를 들고 교실에서 자랑을 했다. 문제는 그 딱지가 돌봄 교실에 다니지 않는 친구 나은이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거 나은이가 준 거다. 예쁘지? 나은이가 나 좋아한대~ 하하하"
​이 해맑은 선언을 듣는 순간 예진이의 눈썹이 위아래로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책장을 넘기던 예진이는 중얼거렸다.


​"그게 뭐가 뭐가 그렇게 예쁜데?"

"나도 접을 수 있거든?"


​민제는 예진이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질투 작전 티가 팍팍 났다. 예진이는 민제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리고는 휙 하고 교실을 나섰다. ​잠시 후 돌아온 예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책을 펼쳤다. 하지만 민제는 일부러라도 계속 나은이 이야기를 꺼내며 예진이의 마음을 건드렸다.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지만 나는 안다. 예진이의 그 표정 속에 좋아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질투란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의 가장 순수하고 서툰 고백 방식이니까.


​나는 조용히 민제를 불러 물었다.
​"민제야, 너 나은이 좋아해?"
​민제는 고개를 저으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 저는 예진이가 더 좋아요. 근데 예진이도 저 질투 나게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선생님, 예진이한테는 비밀이에요."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순수하고 솔직한데 어쩌면 어른들의 마음보다 더 복잡한 이 아이들의 마음. 아홉 살 인생의 가장 솔직한 감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난 돌봄 교실에서 얻는 가장 큰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돌봄 교실

#커플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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