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도 타이밍이다.
2학년인 종욱(가명)이는 평소보다 일찍 귀가할 예정이다. 학원에 한 시간 일찍 보내 달라는 아버님의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선생님 학원 끝나면 아빠랑 영화 보러 갈 거예요."
"어머나 종욱이는 좋겠네"
아버지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며, 종욱이는 들떠 있었다. 종욱이의 아버님은 대부분 타지로 일을 나가셨고 그럴 때면 할아버지와 단둘이 지내는 날이 많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종욱(가명)이가 말했었다.
"아빠는 비 오는 날에만 집에 있어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더 챙겨주고 싶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먼저 다가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고 가라 하니깐,
"선생님! 배 안 고파요. 그냥 갈게요."
고개를 저으며 아이는 괜찮다고 말한다.
학원이 끝나면 아버지를 만날 거니깐, 영화를 보며 먹을 수도 있겠다는 짧은 생각에서였다. 가방에, 떡과 음료수를 챙겨 종욱이의 가방에 넣었다.
"괜찮은데요..."
"혹시 깜박하면 어떡해요."
안 내킨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난 다시 한번 덧붙인다.
"그럼 선생님이 아버님께 간식을 가방에 넣어뒀으니 확인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놓을게 그럼 되지? 학원 끝나면 배도 고플 거야 아빠 만나면 같이 먹던지... 꼭 먹어야 해, 알겠지?"
"네... 알겠어요..." 말끝을 흐린다.
어머님이 안 계신 아이라 더 챙겨주고 싶었다. 결석생이 있던 터라 아버님과 먹으라고 떡을 더 챙겨주었다. 이렇게 따뜻하게 챙겨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라며 나 혼자 뿌듯해하면서...
며칠 뒤,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돌봄 교실로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혹시 종욱이 간식을 가방에 넣어주신 적 있으세요? 며칠째 냄새가 나서 가방을 열어보니, 돌봄 교실에서 받은 간식 같더라고요. 제가 정리해 뒀습니다."
선생님의 말 끝엔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구머니나..."
"아뿔싸..."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작은 호의로 챙겨준 떡과 음료수가 일주일 넘게 아이의 가방 속에서 책에 짓눌리고 숙성(?)되어 결국 담임선생님의 손에 의해 처리되는 사태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5월의 끝자락이지만 곧 여름인데... 만약 아이가 며칠 뒤에 먹기라도 했다면 생각만도 아찔하다. 왜 그날 괜한 고집을 부렸을까 후회를 했다.
진심과 따뜻한 호의도 소중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순간 바로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 그리고 거절의 말 앞에서 마음 약해지지 말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태도가 때로는 더 큰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간식은 무조건 돌봄 교실에서 먹고 귀가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날은 여름 햇살 아래 괜히 아이를 챙긴다는 감성에 젖어 그 원칙을 어겼다.
그 이후로는 원칙을 꼭 지키기로 했다. 간식은 반드시 교실에서 먹고 가도록 했다. 부득이하게 챙겨줘야 할 때는 상할 염려가 없는 것으로 챙겨준다거나 다음 날엔 학생에게 꼭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괜스레 마음이 앞서 원칙을 무너뜨렸던 그날, 그날의 여름 냄새는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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