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찾기 놀이, 독서의 문을 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똥고집처럼 내 머릿속에 붙어 다닌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괜히 책 한 권 들고 싶어지는 건 가을이 부리는 마법 같다.
방학 내내 공사로 닫혀 있던 학교 도서관도 활짝 열렸다.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향한다. 학부모 봉사자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시니 도서관 공기도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금세 책꽂이 앞으로 몰려갔다. 형형색색의 위인전, 과학 시리즈, 인물 이야기, Why?책까지 책장이 무너질 듯 빼곡하게 꽂혀 있다.
아이들 반응은 둘로 갈린다. 책꽂이를 여기저기 탐색하며 "이거 재밌겠다." 하는 아이. 그리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읽을 책이 없다"는 아이.
"세상에나 수십 권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데 읽을 게 없다고?"
그럴 땐 작은 놀이를 제안한다. "그럼 선생님이랑 책 제목 찾기 놀이해 볼까? 여기 꽂힌 책 중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책을 찾아보는 거야. 첫 번째 문제는 쉬운 거야! <선생님도 놀란 과학 뒤집기> 어디 있을까~~요?"
승부욕이 불타는 몇몇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눈을 부릅뜨고 찾기 시작하더니
"보자 보자~~ 찾았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딩동댕~ 정답! 이번엔 누가 찾아볼래?"
"제가 찾았지용, 꼭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먼저 찾은 민우 마이쮸 당첨!"
마이쮸 얘기에 책 사이를 뒤적이는 아이들의 손길이 더 빨라진다. 그 손끝에 한 권이 잡히는 순간, "읽을 책이 없다"던 말은 "이 책 재밌겠다."로 바뀌기도 한다.(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선생님, 문제 또 내주세요."
나는 다시 문제를 냈다.
"이번엔 조금 어려울 거야 제목이 아주 예쁘거든. <찰랑찰랑 사랑 하나>를 찾아보세요~"
두 아이가 경쟁이라도 하듯 책장을 뒤적인다. 또래보다 키가 작고 장난꾸러기인 지호가 책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큰소리로 외친다. "찾았다!찾았다! 선생님, 찾았어요. 맞죠? 맞죠?", "오~ 맞네 잘 찾았어요." 책을 들어 보이자 노란 원피스를 입은 주인공의 모습을 보더니 여기저기서 "어? 맞네 그거네" 하는 아쉬움이 터져 나온다. 제목이 예뻐서 펼쳐 보니 주인공 봄인이는 가족과 친구들 속에서 부딪히고 웃으며 느끼는 소소한 사랑과 설렘이 담긴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간 코너에 놓인 또 다른 책,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표지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제목이 마치 가을빛처럼 마음을 적신다.
세 번까지 제목 찾기 놀이가 끝나자 아이들은 "이제 그만할래요~"하고 손을 내젓는다. 왜 '삼세판'이란 말이 있는지 알 것 같다. ㅎㅎ 세 번을 넘기니 지루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책들을 하나둘 꺼내 들기 시작했다.
<평범한 어린이가 말하는 모두의 행복>에서는 열두 살 아이가 세상 속에서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회 수업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거짓말의 색깔>을 읽던 아이들은 "거짓말도 색깔이 있다고?" 하며 깔깔 웃었다. 또 다른 아이는 하늘을 나는 강아지 그림에 이끌려 <나는 강아지 날개>를 펼쳐 들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뻥튀기는 속상해>를 읽던 아이가 "뻥튀기가 왜 속상했을까?" 하고 책장을 넘겼다.
책이 두꺼우면 긴 글을 읽기 어려워 그림만 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책 속 세상과 만나는 첫걸음이 되어 준다.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누군가는 모험을 찾아 떠나고, 누군가는 웃음을 쫓고, 또 누군가는 그림 속 세상에 빠져든다. 도서관 안은 고요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은 분명 여행을 떠나듯 시끌벅적할 것이다.
책장 한편에서 만난 <스마트폰에 빠질 때 놓치는 것>은 묘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휴대폰 속 세상에 빠져 주변의 풍경을 놓쳐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쩐지 내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브런치 글에 몰두하거나, 눈앞의 현실 대신 생각의 숲에 갇힐 때가 있다. 그때 아이들의 웃음은 흘러가고 '잠깐만, 이것만 끝내고' 라며 핑계를 대는 내 모습에서 지금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아! 맞다. 지금 감성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은 근무시간인데... 나는 책을 덮고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간식은 언제 먹어요?"
"돌봄 교실 언제 가요?"
책과 함께 하면서도 간식 생각은 빠지지 않나 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맞는듯하다. 다만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설렘과 호기심 속에서 만나는 독서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책 냄새와 아이들 웃음이 뒤섞이는 이 계절 참 멋지고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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