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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우산 꾸미기

상상력이 우산 위에 피어나다.

by 빛나다온

아침까지만 해도 맑고 청명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면 갑자기 "우르릉 쾅"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를 쏟아내는 날이 있다.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아이들과 부모님에게는 난감한 순간이다.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라 조부모님이 서둘러 빗속을 뚫고 우산을 들고 오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편을 덜기 위해 학교에서는 '양심 우산' 제도(비 오는 날 자유롭게 빌려 쓰고, 다음 날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방식)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하지만 저학년들에겐 우산이 큰 듯해서 나는 매년 돌봄 교실 아이들만의 우산을 구입하고 있다. '우산 꾸미기 활동'도 같이 하기 위해서다.


투명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튼튼한 우산 위에 아이들이 유성 매직으로 그림을 그린다. 누구는 파란색으로 색칠하고, 누구는 환하게 웃는 아이를 그린다. 또 어떤 우산엔 하트가 가득하다. 그릴 게 없을 땐 역시 하트가 만능이다. 저마다 그리고 싶은 캐릭터를 그리기 바쁘다. 어떤 아이는 실수할까 봐 못 그리겠다고 한다. 수정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선생님, 그릴 땐 예쁜데 막상 쓰면 유치해 보일 것 같아요."
지호의 말에 아이들이 웃는다.

옆에 있던 예진이가 툭 한마디를 건넨다.
"유치해도 괜찮아. 우리는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이럴 때 해보지 언제 해보겠어? 중학생 되면 이런 거 못 하잖아~"
서울대에 가겠다는 우리 반 똑똑이 예진이 다운 말이었다.

민재도 한마디 거든다.
"그~래. 비가 오는데 누가 우리 그림을 보겠어~"

듣고 있던 1학년 남자아이들이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네. 그것도 맞네~"
"민재 형아랑 예진이 누나 똑똑하다."

재미난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도 각자 눈빛 속엔 은근한 뿌듯함도 보인다.

"얘들아, 이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희만의 특별한 우산이란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네 마음을 담은 작품이야. 그러니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말하자 아이들은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 제 우산 보세요! 이름표에 이름도 써놨어요. 아무도 못 가져가요~"

한 아이가 자랑하니 다른 아이가 금세 받아친다.


"저는 30이라고 써놨어요!"

"으응? 왜 30이니?"

"학교 앞에선 차가 30으로 달려야 하잖아요. 그래서요~"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킥킥거리며 말한다.

"그럼 난 100 써야겠다. 받아쓰기 100점 받고 싶어서!"


"야! 우산에 100 적으면 운전하는 사람들이 헷갈리지~~ 차라리 받아쓰기 공부를 해라!"

유나의 한마디에 다들 "그~래~~~" 하며 맞장구를 친다.


순식간에 숫자 전쟁이 시작되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아이들은 어찌 이런 기발한 생각들을 하는지...


비 오는 날이면 저마다의 우산을 활짝 펼칠 것이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불현듯 마음이 젖어드는 순간, 아이들의 맑고 환한 웃음처럼

젖은 마음 위에도 환히 펼쳐지면 좋겠다.


오늘 활동도 즐겁게 끄~~ 읏!





#돌봄 교실

#비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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