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5살인데 엄마가 암이라니

암입니다 라는 드라마 대사를 듣던 날

by 혀나

특별할 게 없던 날들이었다. 아기 키우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 피곤한 건 어쩌면 당연했고, 건강에 크게 신경을 쓴다고 할 수는 없어도 술, 담배 같이 나쁘다는 걸 하지는 않으니 특별히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고 소소한 건강검진이나마 빼놓지 않고 받아왔는데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당연히 건강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른쪽 가슴에 뭔가 잡히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했지만 찜찜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코로나가 한창 무서울 때라 병원에 가기도 망설여졌다. 집에 어린 아기가 있는데 괜히 사람 북적이는 병원에 갔다가 큰일이 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병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게 클 거다. 조금 미뤄도 별일 없겠지 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 날 겨드랑이에도 뭔가 멍울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는 정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암은 임파선을 따라 전이가 되어 겨드랑이에도 멍울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느낌이 싸했다. 그 길로 검사를 받고 일주일 후 역시나 추가로 확인할 것이 있으니 초음파 재검을 받으라는 결과를 받았다.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으니 겁먹지 말고 오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때까지도 나이가 젊으니 별일 없을 거라고 나름 긍정회로를 돌렸던 거 같다.


그 무렵 일하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진짜 숨이 턱까지 차도록 나를 혹사시키는 그런 느낌이었다. 교통이 좋지 않은 경기도 북부에서 서울의 강남까지 출퇴근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는데 일은 항상 너무 많았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해서 아기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정말 숨찬 일상이었다. 거기다 지독한 허리통증으로 잠도 설치니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그렇게 큰 병이 자라고 있었으니 극심한 피로를 느꼈던 거 같지만 그땐 이상증상이라고 자각하지 못했다.


재검 초음파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날은 특히 잘하지 않던 실수를 해서 그걸 수습하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평소보다 늦게 퇴근을 했다. 7월 말 한여름 해는 쨍쨍 내려쬐지 매연과 먼지가 가득한 버스 중앙정류장에서 정수리와 발등이 타들어가는 듯한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지독하게 배차시간도 길었던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는 격한 마음이 들었고 그 길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일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쌓여온 오래된 피로로 컨디션은 바닥을 쳤고 그때당시 줄줄이 기다리고 있던 일과 프로젝트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둬버리고 나니 속은 시원했지만 그래도 아직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말까지만 휴식하고 다시 일을 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큰 병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더 컸던 거 같다.


그렇게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던 그날. 혼자 가기에는 용기가 안 나서 일이 있던 남편대신 언니와 함께 갔다. 그러나 나의 한없이 긍정적이던 생각과는 달리 결국 걱정하던 일이 닥치고 말았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암입니다'를 내귀로 듣게 될 줄이야. 유방암 3기. 그것도 이미 전이도 의심되는 상태. 의사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하는데 바빠서요 라는 한심한 대답밖에 못하고, 한시라도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으라는 얘기를 듣고 더 이상 한마디도 못하고 병원을 나왔다. 드라마 대사 같은 '암입니다'를 막상 들으니 좀 실감이 안 나고 멍했던 거 같다. 멀쩡한 거 같은데 내가 암환자라고. 정말일까. 내 이야기가 맞는 건가 하며 눈물도 안 났다.


그날 밤이 되어 조용히 혼자 누워서 생각을 하다 보니 나에 대한 걱정보다 우리 아기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크게 몰려왔다. 나만 믿고 세상에 온 이 작은 생명을 내가 책임지지 못하면 어쩌지. 아직 학교도 안 갔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아기 어른될 때까지 못 키우면 어떻게 하지. 나는 5살 기억도 없는데 우리 딸이 엄마를 기억조차 못하고 살게 되면 어쩌지. 옆에 누운 아기를 보며 그제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삶이 멈출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 내가 낳은 우리 딸의 기억에 내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서럽고 슬퍼졌다. 엄마 없는 마음 시린 삶을 내 딸에게 줄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은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련은 닥치고 말았고 앞으로의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갈 건지 짐작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지. 단단해져야지. 씩씩하게 이산을 넘어가야지. 우리 딸 키워야 하니 내가 정신 차려야지. 그렇게 내 앞에 쉽지 않은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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